[줌] "시각장애학생들 내면에 자리 잡은 미술세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2024-12-30

전북맹아학교 '도마뱀이 된 코끼리' 작품 전시회 10년째 지도

10회까지 전시회 참여한 재학생 80명, 200여점 작품 전시

시각장애학생 대상 미술지도 방향성 등 고민

정문수 교장선생님 및 교직원들의 도움에 큰 용기 얻어

추운 겨울, 사람이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을까. 말이나 글이 아닌 그림이 따뜻함을 퍼뜨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연대성을 상실한 초개인화 시대에 말이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와 속도를 뛰어넘어, 천천히 다정하게 온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 10년 간 전북맹아학교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며 완성한 그림만 200여점. 시각장애학생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미술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김운기 선생님(39)이다.

최근 전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도마뱀이 된 코끼리’ 전시회는 김운기 선생님이 2014년부터 맹아학교 학생들과 함께 준비해 선보인 작품 전시이다. 학생들의 그림을 10년 동안 지도해 온 김 선생님은 "시각장애 학생들의 내면이 궁금해 전시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졸업생인 전맹 학생에게 찰흙으로 코끼리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했어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작업이 이뤄졌는데 돌아와서 보니 몸통이 기다랗고 다리 4개 달린 물체를 만들었어요. 저는 그걸 보고 ‘도마뱀이네!’ 라고 얘기를 했죠. 그때 시각장애 학생들의 내면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본 것 같아요. 그들은 한 번도 코끼리를 본 적이 없으니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 수 없었죠. 그때 학생들의 내면세계의 미술은 이렇게 나타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가 ‘그림 지도' 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후 맹아학교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학생들이 그리고 싶은 작품에 공을 들이다 보니, 점점 참여하는 학생 수도 늘었다. 지난 10년 간 전시회에 참여한 재학생 수가 80여명에 이른다. 전시된 작품수로만 따지면 회화 50점, 조소 150점 등이다.

“2회 전시회를 준비할 때 그림의 주제를 정해서 진행해볼까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들 내면세계를 끌어내려면 주제가 없어야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주제가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선생님은 지난 10년 동안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불분명한 무언가를 학생들이 캔버스 위에서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각장애학생들의 미술을 지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도 길었다.

“제가 방향을 잃고 고민할 때마다 정문수 교장선생님께서 시각장애학생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열 번의 전시회까지 도달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북맹아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교직원들이 하나가 되어서 전시회를 준비해줬어요. 모든 과정을 생각해보면 소중하고 감사한 일 뿐이에요”

그는 투박하고 담담하게 미술 전시회에 대해 이야기 했다. 본인의 성과나 노력을 내세우기 보다는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의 그림과 교직원들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그런 게 진짜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진심을 담아 세상에 따뜻함을 퍼뜨리는 사람,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김운기 선생님의 온기가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전북맹아학교 '도마뱀이 된 코끼리' 전시회가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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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 된 코끼리 #전북맹아학교 #김운기

박은 parkeun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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