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면 종종 별책 부록을 준다. 부록은 꼭 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위대한 발견들이 부록에 실리는 경우가 심심찮다.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서 『방법서설』에는 세 개의 부록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기하학’이라는 부록이다. 여기서 좌표의 개념이 소개되었다. 오늘날 좌표 없이는 살 수 없다. 물론 『방법서설』도 철학적 영향력이 대단했지만, 이 부록이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이작 뉴턴의 작품 『광학』은 과학사에서 빛에 관한 명저로 꼽힌다. 이 책엔 두 개의 부록이 딸렸는데, 이 부록에서 미분법이 소개되었다. 뉴턴이 미분법과 관련하여 발표한 최초의 논문이다. 현대 과학의 많은 부분이 미분법 없이는 성립되기 어렵다. 이 부록 또한 불후의 인류 유산이다.
인류 지성사 상 가장 빛나는 부록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예 책 이름이 『부록(Appendix)』(사진)이란 작품이다. 바로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2000년 이상 인류의 도전을 뿌리친 ‘평행공리의 증명’을 일거에 일축한 헝가리 수학자 야노시 보여이(1802~1860)의 논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유클리드 공간임을 처음으로 제안한 기념비적 걸작이다. 이는 그의 아버지 파르가스 보여이의 논문 『텐타멘(Tentamen)』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실려 이름이 ‘부록’이 된 경우다.
부록의 활약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타고난 운명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부록은 대체로 본문에서 밀려난 소소한 이야기다. 본문의 불쏘시개가 되고 장단꾼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그것은 또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노포 식당과도 같다. 얼마 전, 오랜만에 유클리드의 『원론』의 부록을 찾아 읽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힙시클레스가 덧붙인 황금비 관련 글인데 다시 읽어도 정감이 넘쳤다. 그리고 문득 상념에 잠겼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차라리 부록이었으면 좋으련만. 늘 정겹고 애틋한 곳. 그러면 세상이 더 온화해질 텐데.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