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안 된다. 사람이 아니다.(It‘s not human)”
샌프란시스코 내야수 타일러 피츠제럴드(28)는 팀 동료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최근 이렇게 말했다. 지난 18일 필라델피아전 이정후를 보고 난 뒤 반응이다. 이날 이정후는 휴식을 위해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그러나 9회초 대타로 나와 깨끗한 안타를 때렸다. 필라델피아 좌완 강속구 투수 호세 알바라도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6구째 시속 160.5㎞(100.3마일) 싱커를 받아쳤다. 대타로 나와 좌완 파이어볼러의 빠른공을 곧장 때려내는 걸 보고 빅리그 동료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후는 27일 텍사스전 4타수 1안타를 포함해 시즌 타율 0.327(리그 9위) 3홈런 OPS 0.946을 기록 중이다. 어깨 부상으로 37경기만 치르고 타율 0.262로 지난 시즌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기록이 좋아졌다. 출루율이 0.310에서 0.388, 장타율이 0.331에서 0.558로 올랐다. 100을 리그 평균으로 하는 wRC+(조정득점창출력)는 지난해 83에서 163, 거의 2배가 됐다.
빠른공 대처 능력이 특히 눈에 띈다. 이정후는 이번 시즌 알바라도에게 벌써 2안타를 쳤다. 18일 대타 안타를 쳤고, 16일에도 160㎞(100마일) 싱커를 받아쳐서 안타를 만들었다. 미국 FOX스포츠는 “알바라도는 이번 시즌 좌타자에게 안타 2개만 허용했다. 그 2개가 모두 이정후의 방망이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좌완에 워낙 공이 빨라 좌타자가 알바라도에게 제대로 대응하기가 힘든데, 이정후는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후는 이번 시즌 시속 158.4㎞(99마일) 이상 빠른공을 상대로 벌써 3안타를 때렸다. 알바라도에게 2안타를 때렸고, 지난 9일 신시내티 헌터 그린의 159.5㎞(99.7마일) 빠른공도 안타로 연결했다. FOX스포츠는 “이정후는 이번 시즌 99마일 이상 빠른공을 상대로 3안타 이상을 때린 리그 유일한 좌타자”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정후에게 과잉 지출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정후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천부적인 콘택트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1년 만에 기록이 큰 폭으로 향상됐지만, 이정후의 스윙 스피드는 큰 차이가 없다. 지난해 113㎞에서 올해 109.6㎞로 오히려 더 내려갔다. 메이저리그 평균 스윙 스피드(114.4㎞)에도 미치지 못한다. 억지로 강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달라진 건 적극성이다. 야구통계전문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초구 스윙 비율이 지난해 17.1%에서 29.5%,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온 공에 대한 스윙 비율이 58%에서 65.4%로 올라갔다. 빅리그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면서 판단이 빨라졌고 스윙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히팅 포인트가 앞으로 나오면서 타구 질도 좋아졌다. 잡아당긴 타구 비율이 지난해 33.6%였지만, 올해는 47.6%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는 (타서에서) 공을 정말 빨리 본다. 정말 놀랍다“ 칭찬했다.
타격 스탠스도 변화를 줬다. 원래도 오픈 스탠스에 홈플레이트 쪽으로 가까이 붙는 유형이었는데, 올시즌은 앞다리(오른쪽 다리)를 더 열고, 홈플레이트 쪽으로도 가까이 더 붙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와 커터를 때려내기 위한 선택이다. FOX스포츠는 “이번 시즌 이정후보다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붙는 타자는 리그 전체에서 3명뿐이다. 이정후보다 더 크게 앞다리를 여는 타자도 8명뿐”이라고 전했다. 이정후는 “한국에서 뛸 때도 그랬다. 그때 타격 메커니즘을 다시 가져온 건데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O리그 시절 익숙했던 폼으로 돌아갔는데, 타격 내용이나 결과는 훨씬 더 좋아졌다. 빅리그 2년 차 이정후의 적응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