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를 좀먹는 정치인을 방관할 때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2024-12-12

독재의 탄생

로마는 기원전 509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로마 공화정은 450여년 간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점차 쇠약해지다가 기원전 27년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즉위와 함께 끝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 에드워드 와츠가 2018년에 쓴 <독재의 탄생>은 로마 공화정의 역사를 짚어가며 공화정의 몰락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책은 기원전 280년 여름 로마 공화국의 군대가 그리스 에페이로스 왕국의 왕 피로스의 군대와 격돌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피로스는 과거 스파르타의 식민지였던 타렌툼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고 군대를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시킨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큰 피해를 입은 피로스는 로마에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다. 애초 원로원은 피로스의 이 같은 제안에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원로원 의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타나 “피로스의 자만심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누구이든 당신들을 쉽게 진압할 수 있는 존재로 깔볼 것”이라고 일갈하자 동맹 거부로 돌아선다. 피로스는 또 포로교환 협상을 위한 로마 측 대표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를 뇌물로 회유하려 했으나, 루스키누스는 “로마 공화정은 공직에 나서는 모든 이에게 어떤 소유물보다 더 훌륭한 명예를 부여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피로스는 로마인들을 급속하게 무너뜨릴 수도, 배신을 유도해 무찌를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 싸우는 것 외에 그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처럼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과 재산보다 사회적 명예를 중시하는 가치관이야말로 공화정을 지탱해준 버팀목이다. 로마인들은 “공화정이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속하는 정치 체제라는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었다.

로마 공화정은 “합의를 도출하는 견제와 균형의 구조” 위에 세워졌다. 정규 직위 중 최고직인 집정관은 임기를 1년으로 제한했고 두 사람을 뽑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평민 출신인 호민관은 귀족들의 횡포로부터 평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전직 고위 관리들로 구성된 원로원은 원칙적으로는 ‘자문 기구’였으나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동원해 비공식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현직 정무관들의 독주를 제어했다. 로마 공화정의 공직자들은 “타협과 협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가 1·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세계의 확실한 패권 국가로 부상하면서 공화국의 균열이 시작됐다.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전리품이 유입되고 도시 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공공사업이 활발해지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갑부들이 출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배층과 평민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재산보다 개인의 명예와 가문의 혈통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약화시키고 공적 명성을 더 많은 재산을 얻는 데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로마 공화정의 쇠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인물들은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그라쿠스 형제다.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호민관으로 선출된 후 가난한 시민들에게 농지를 분배하는 개혁안을 추진하다 원로원이 승인을 거부하자 관행을 깨고 법안을 직접 평민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또 지지자들의 폭력 행사를 방조함으로써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티베리우스는 결국 반대파에게 살해됐으나 정치적 목표를 위해 공화정의 규칙을 깨고 합의 대신 폭력을 용인하는 부정적인 선례를 남겼다. 이때 발생한 공화정의 균열은 동생 가이우스가 형과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다 또다시 살해되면서 더욱 악화됐다.

이후 로마인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전제정을 선택해 ‘자유’ 대신 ‘안정’을 취했다. 그러나 그 안정의 대가로 로마인들은 “칼리굴라, 네로, 콤모두스 같인 잔인하거나 정신이 불안한 독재자들이 단지 자기 마음에 끌린다는 이유로 로마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태”를 감수해야 했다.

책은 오늘날 위기에 처한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에 보내는 저자의 경고다.

“무엇보다도 로마 공화국은 후대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정치 방해 공작에 눈감고 정치 폭력을 끌어들일 때 따라오는 엄청난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로마 역사는 정치인들이 체제를 좀먹는 행동을 할 때 시민들이 이를 외면하면 그들의 공화국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한다는 현실을 더없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응징되지 않는 정치적 기능 장애는 합의 도출을 방해하고 폭력을 조장한다. (중략) 이것이 바로 공화국이 죽음에 이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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