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프랑스 정국

2024-12-12

파리가 잠깐 세계의 중심이 됐다.

역사적으로 수차례 ‘유럽의 수도’라 불린 파리에서 지난 7일 토요일 저녁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4년 8개월 전 화마로 무너진 860여년 역사의 성당이 복원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첫 해외 방문지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전쟁 종식 방안 등을 논의했다. 유럽의 대표를 자부하는 프랑스는 이 행사로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은 정치적 위기를 일시적으로 감췄을 뿐이다.

지난 4일 프랑스 하원은 미셸 바르니에 총리 정부를 불신임했다. 두 달 전 그는 대기업·부자 대상 증세와 복지의 대폭 축소를 골자로 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다섯 달 전 총선에서 사회당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이 승리했다. 극우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은 3위에 그쳤다. 야당들은 합심해 복지지출 확대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거부했다. 이달 안에 총리가 임명되어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정치적 위기는 심화된다.

제5공화국에서 3개월 최단 총리가 된 바르니에는 단명이 예상됐다. 지지도 1위 정당에서 총리를 임명하는 관례를 깨고 마크롱은 4위 공화당의 바르니에를 고집했다. 마크롱은 자신과 앙숙 관계인 좌파연합 인사를 총리에 임명할 수 없었다. 더욱이 대선에서 3번이나 격돌한 마린 르펜의 인사를 총리로 임명할 수는 없기에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단기 총리는 계속 나올 듯하다. 하원이 여소야대라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의 운명을 야당이 쥐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제가 휘청거린다. 11월 말부터 프랑스 국채 시장이 출렁거렸다. 기관투자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프랑스 국채를 구입할 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했다. 그 결과 독일에 이어 유럽연합(EU) 두 번째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국채 금리가 그리스보다 높아졌다. 그리스는 EU에서 국채 금리가 꽤 높은 편이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프랑스에 작지 않은 상처다. 그 이후 한때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소폭 내려가 그리스 국채보다 0.1% 포인트 정도 낮아졌지만, 11일 기준으로 그리스보다 0.2% 포인트 다시 높아졌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통합의 쌍두마차인 독일은 내년 2월 23일 조기 총선이 예정됐고 기민당·기사당으로 정권교체가 가시권이다. 독일의 리더십은 조금씩 회복될 듯한데 프랑스의 리더십은 더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으로 유럽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데 말이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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