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중국 남동부 푸젠성 푸저우의 한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있는데, 음식 배달 기사가 로비로 들어왔다. 그는 배달 로봇에 음식을 넣은 뒤 방 번호를 눌렀다. 둥그스름 귀엽게 생긴 로봇이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서자 문이 열리고 층수가 자동으로 눌렸다. 15층에서 내려 객실 앞까지 간 로봇이 투숙객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리자, 투숙객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식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기술발전이 일상으로 들어온 장면을 보니 중국에 온 게 실감 났다. 배달원들이 음식을 들고 서서 고객을 기다리는 서울 고층빌딩의 로비 풍경과 대비됐다. 국내 식당에도 음식을 나르는 로봇이 간혹 있지만, 중국처럼 복도를 누비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양보해줘 고맙다고 인사하고, 도착했다고 전화를 거는 등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은 보지 못했다.
10개 첨단 분야 10년 혁신 성공적
전기차·배터리·로봇 선진국 수준
10년 후엔 한·중 격차 얼마나 될까
지난달 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 초청으로 푸젠성을 방문해 첨단 기술기업과 산업단지를 둘러봤다. 중국 남부지방 방문은 10여년 만이었는데, 기술 발전의 밀도가 높게 느껴졌다. 올해가 중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 완성의 해라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중국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첨단 기술 및 제조 역량 발전을 목표로 10개 분야를 선정해 지난 10년간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 반도체·인공지능(AI), 산업자동화·로봇공학, 전기차·배터리, 초고속 열차, 신재생 에너지 발전설비 등이 포함됐다.
푸젠성에는 해상풍력, 리튬이온 배터리 등 이 정책의 목표 산업이 포진했다. 푸칭시 근처 해안에 조성된 푸젠 싼샤 해상풍력 국제산업단지는 중국 최초로 산업 전 공정을 아우르는 공급망을 갖췄다. 한 자리에서 터빈, 모터, 블레이드, 철강 구조물 등 해상풍력 발전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한다. 당연히 효율이 높다. 풍력 터빈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데, 강한 바람 덕분에 발전 용량이 넉넉하다고 한다. 청량한 하늘을 향해 유유히 회전하는 터빈 날개를 보면서 미세먼지가 중국 탓인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제조 2025’ 종료 시점을 맞아 성과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목표한 분야 상당 부분에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대폭 줄면서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중국산 전기차와 리튬이온 배터리는 10년 새 세계를 제패했다. 세계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 업체 CATL이 푸젠성에 있다. 지난해 중국 공장에 새로 설치된 로봇(30만대)은 다른 나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일부 첨단산업 분야는 중국이 서양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야심 찬 정책을 시행한 이듬해인 2016년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 트럼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중국제조 2025’ 정책에 제동이 걸릴까 잠시 긴장했지만, 대세에 지장은 없었다. 미국이 뒤늦게 필사적으로 첨단 반도체 기술 이전을 막으면서 반도체 발전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그밖에 분야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오히려 자양분이 됐다. 트럼프의 보호주의가 부른 자급자족에 대한 욕구는 중국인들을 더욱 채찍질했다.
기술업계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은 흔히 ‘996’ 근무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총 72시간 일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2021년 법으로 금지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현지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중국인들을 열심히 일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만큼 조금 힘들더라도 전력 질주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견제와 억압에 맞서는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음 주 베이징에서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4중전회가 열린다. 핵심 의제는 지난 5년간 경제계획을 검토하고 2026~2030년을 아우르는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회의 일정을 발표하면서 과학과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생산 능력”을 개발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외신은 ‘중국제조 2025’의 신규 버전을 선보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퀀텀 컴퓨팅 등 미래지향적 기술, 2030년까지 제조업의 90%에 AI 적용 같은 목표가 설정될 수도 있다. 가속이 붙은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이 10년 후 어떤 수준일지 두렵고 기대된다. 혁신은 정체되고, 정쟁이 전부인 듯한 한국과의 격차는 또 얼마만큼 좁혀질까. 아니면 뒤집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