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전기를 망치고 있다

2025-01-30

전기요금은 정치요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요금 산정 원칙이 흔들리고 용도별 전기요금은 덧대다 못해 누더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신속히 도입해야 할 법은 기약 없이 입법을 미루고, 어쩌다 만든 법들은 상호 충돌되는 조항으로 시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 6월 시행에 들어간 분산에너지법이 있다. 분산에너지란 원자력발전이나 석탄발전소 같은 대형 발전원이 아닌 소규모 발전원에서 만드는 전기를 말한다. 이 법의 탄생 배경부터 정치가 전력산업을 어떻게 망쳐왔는지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전력원으로 본격 등장하고 2015년 파리협정이 체결되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와 날씨에 따른 지역 편재성과 간헐성이 심한 대신 변동비가 매우 저렴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재생에너지의 공급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중앙에서 결정하는 경직된 요금체계가 아닌 실시간 공급과 수요로 결정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에 정부는 2017년 에너지 신산업의 육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제한적이나마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전력 판매시장을 오히려 한전이 독점하도록 정하는 정반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결국 두 법안은 서로 다투다가 모두 폐기됐다. OECD 국가 대부분에서 지난 20년간 경쟁체제 도입이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주 어젠다였음에도 우리나라는 정치논리로 뒤늦은 움직임마저 짓밟은 것이다.

정치권 개입으로 요금산정 혼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분산에너지법이 제안되었다는 점이다. 분산에너지법 핵심은 전기 생산 지역에서 소비를 하도록 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다. 이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이다. 분산특구로 지정되면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는 특구 내에서 한전엔 송배전 요금만 지불하고 전력 직거래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이용할 필요 없이 그 지역에서 비교적 값싸게 사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이 법도 결과적으로 전기요금 정상화에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다. 법 제45조에선 전기 판매사업자가 송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달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에 근거해 정부는 올 상반기 지역별 차등요금(LMP)을 도매시장에 도입할 계획이며, 내년 목표로 소매시장에도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법의 취지대로라면 이 조항은 수도권 전기요금을 정상화(인상)하고 비수도권 전기요금을 인하하여 장거리 송전 부담을 줄이고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 상황을 종합하면 수도권 요금은 유지한 채 비수도권 도매요금만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비수도권만 요금이 인하되면 분산전원으로서 비수도권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재생에너지의 공급 확대 요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LMP는 중앙급전 발전기 200기 중 비수도권 LNG 발전기 11기에만 적용될 예정인데, LMP로 인한 도매가격 차이가 킬로와트시(kWh)당 10원만 된다고 하더라도 LNG 발전기를 보유한 회사들은 연간 8000억원 이상의 수입이 감소하게 된다. 석탄발전기나 수도권 소재 발전기는 정산조정계수라는 명목으로 별도의 보전을 받기 때문에 민간 LNG 발전기만 큰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내년부터 소매요금 차등화도 도입한다고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LNG 발전사의 손실분은 고스란히 한전의 수익 증대로 귀결된다. 정부를 믿고 투자한 LNG 발전사들의 주주들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된다.

또 다른 문제는 권역이 아닌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이원화하다 보니 인천과 같은 도시는 전력자급률이 186%로 매우 높음에도 수도권으로 분류되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인천지역은 전력 소비자가 비교적 밀집해 있고 부하패턴이 좋은 산업용 수요가 많아서 배전원가가 유리함에도 단순히 지리적으로 수도권으로 분류된다는 점 때문에 값싼 전기요금의 혜택을 못 받게 된다.

수요·공급 따라 전기가격 결정을

이렇게 소비자와 지역 간 갈등과 차등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기요금의 정치 요금화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산업용 요금을 집중적으로 인상해왔다. 2002년부터 2017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은 12회, 누계 80.6%를 인상했고 같은 기간 주택용 요금은 인상 6회, 인하 4회, 누계 4.2% 인하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산업용은 7회, kWh당 총 80.0원을 인상했고, 주택용은 5회, 총 40.4원을 인상했다. 그 결과 현재 산업용은 원가회수율이 100%를 초과하고 있으나 주택용은 원가를 다 못 받고 있다. 특히 농사용은 원가회수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정치논리로 왜곡된 전기요금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과도하게 오른 산업용 요금 때문에 기업들이 아예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직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고압전력을 사용하므로, 이렇게 직거래를 할 경우 송전 요금만 부담하면 된다. 이 현상이 도미노화되어 전체 전기의 53%를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가 대부분 직구입으로 전환될 경우 나머지 소비자는 그동안 산업용이 분담해오던 배전요금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전기사업법상 직구입이 가능하므로 법적으로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지금의 ‘정치요금’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전기가격’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농민과 에너지 빈곤층에 지원이 필요하다면 각각 농림축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활용해 지원해야 한다. 이들을 배려한다고 전기요금을 정부가 손수 통제하는 것은 나라 전체의 에너지 동맥을 옥죄는 일이나 다름없다. 동시에 국제 원자재 위기 동안 경직된 가격체계의 직격탄을 맞은 한전은 정상화된 가격체계를 발판으로 재무구조를 정상화시킴과 동시에 앞으로 갈 길이 먼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하도록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정치가 할 일은 또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해상풍력특별법,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법,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도 속히 결정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경제 살리기이자 곧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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