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산불, 진화헬기 떨어져 70대 조종사 숨져

2025-03-26

“뒷산이 30분 만에 전부 불타고, 시뻘건 불길과 자욱한 연기 사이로 가정용 가스통이 펑펑 터졌어요. 생지옥 같았습니다.”

산불 피해를 본 경북 영덕군 주민의 말이다. 초기 진화에 실패한 ‘괴물 산불’이 건물·산림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다. 불기둥은 상승기류를 타고 산과 산을 넘나들며 백두대간을 할퀴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진화 작업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헬기 진화 작업이 3시간가량 중단됐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6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산불”이라며 역대 최대 규모 피해를 예상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서풍을 타고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동쪽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하루 종일 화재 진화에 매달렸는데도 진화율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26일 아침 9시 진화율 92%에 도달했던 울산 울주 온양의 진화율은 같은 날 밤 9시 68%로 후퇴했다. 경남 산청·하동도 같은 시각 기준 진화율이 80%에서 77%로 물러났다. 경북 의성·안동 역시 종일 진화 작업을 펼쳤지만 아침에 68%였던 진화율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산림청·경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는 총 26명이다. 영덕에서 가장 많은 8명이 사망했고, 영양에서 6명, 안동과 산청에서 각각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청송(3명)과 의성(1명·조종사·70대)에서도 숨졌다.

추락사고에 멈췄던 진화헬기, 산불 번지자 3시간 뒤 재투입

이재민은 2만 명을 넘어섰다. 같은 날 오전 9시 기준 전국적으로 2만7079명이 대피했고, 이 중 2만6006명이 여전히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가 커진 건 강풍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5일 의성에서는 순간 초속 5.2m의 남남서풍이 불었다. 바람은 한때 초속 20m의 강풍으로 돌변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불씨가 바싹 마른 나무·낙엽 등에 옮겨붙으면서 피해 범위가 넓어졌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입암리 주민 김정철(60)씨는 “산에서 산으로 점프하듯 불길이 번졌다”고 전했다. 불리한 기상 여건에 전문인력·장비 부족까지 맞물렸다. 현재 투입 중인 산불 진화용 헬기는 담수 용량(1000~2700L)이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형 헬기가 대부분이다.

정태헌 국립경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림 화재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산불 진화용 헬기는 대용량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산불 진화에 동원된 조종사·정비사와 헬기 동체의 피로도 쌓이고 있다. 경북 의성에 투입된 지휘 헬기는 닷새 연속 비행했고, 정비사들은 밤샘 정비에 투입되고 있다. 의성군에선 산불을 끄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해당 헬기는 25일부터 경북 의성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26일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는 대부분 노약자였다.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대피를 유도했을 땐 이미 도로가 불길에 휩싸인 뒤였다. 경북 지역 피해 주민은 “산불이 이미 시군 경계에 도달해서야 대피하라는 재난문자를 받은 데다, 대피 장소도 바뀌어 혼란스러웠다”고 호소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날 “기존 예측·예상을 뛰어넘는 양상으로 산불이 전개되는 만큼, 전 기관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방현·신진호·박진호·김정석·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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