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모를 깊은 숲속,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분명 타이프라이터는 손가락으로 키를 눌러 글자를 찍는 기계건만 종이 위에는 글자 대신 흑백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작가는 짧은 제목 외에 그 어떤 단서도 건네주지 않기에 우리는 독립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이곳은 어디이고,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 건지 끊임없는 호기심의 물음표가 파도쳐 언젠가 감동의 느낌표에 다다를 때까지 말이다.
이 사진은 네덜란드 사진가 알렉스 팀머만스(Alex Timmermans)의 작품 〈The Image Maker〉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그는 초기 사진 기법인 콜로디온 습판 사진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프레드릭 스콧 아처(Frederick Scott Archer)가 개발한 습판 사진은 한 컷의 촬영을 위해 대형 카메라 유리판에 유제 도포, 감광, 정착, 세척, 니스 칠하기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더구나 야외 촬영은 이동식 암실에 모든 화학약품을 싣고 움직여야 하기에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작가는 구형 페츠발 렌즈(Petzval Lens)를 사용해 중앙에는 선명한 이미지가, 가장자리로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흥미로운 프로세스로 완성된 몽환적인 이미지를 두고 ‘사진으로 만든 영화’라 소개한다. 애정을 담은 사진 한장 한장에 스토리를 담았으니 독자들을 위해 이야기 꾸러미를 살짝 풀어달라 청해보기도 했지만 팀머만스는 스토리를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이라 말한다.
긴 영화 한 편이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됐다니 그 속에서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한계가 없는데 말이다. 팀머만스는 보는 이가 지닌 서로 다른 경험치와 스펙트럼, 그리고 감성에 의해 이야기가 완성되고 이 한장의 사진은 오직 그들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버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깊은 숲속, 몽환적인 흑백의 이미지, 중절모를 쓴 신사, 타자기가 만들어낸 이미지들, 과연 여러분의 상상과 감성이 더해진 호기심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열린 결말에 당혹해 하는 대신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찾아보자. 다행히 그 어떤 스토리도 모두 정답이니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