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의 발목을 잡는 문제는 여전히 잔디다. 큰 돈을 쓸 수 없는 현실,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제약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이 난제를 풀어낼 단초는 있다. 스포츠산업진흥법 제17조 3항에 따른 공공체육시설의 수익·관리위탁이다. 각 구단이 이 법안을 잘 활용한다면 경기장 소유 및 관리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구조적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K리그에선 대전 하나시티즌이 이 법안을 잘 활용하고 있는 사례다. 하나은행은 2020년 대전시에서 대전 시티즌을 인수해 재창단에 나설 당시 홈구장(대전월드컵경기장)과 클럽하우스(덕악축구센터)의 25년 관리위탁을 이끌어냈다.
당시 협상을 주도했던 김진형 전 초대 단장은 6일 기자와 통화에서 “K리그에서 관리 위탁의 첫 사례는 우리가 아닌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구FC”라면서도 “잔디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은 2021년 1월부터 대전시설관리공단에서 홈구장 및 클럽하우스 운영권을 양도받아 시범 운영한 뒤 2022년부터 25년간 관리위탁 계약을 맺었다. 대전이 관리위탁에 나선 첫 목표는 경기장 전체의 수익 시설에서 재정 안정을 꾀하는 것이었지만, 잔디를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김 전 단장은 “내가 2021년 중반 대전을 떠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구단들이 잔디를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하려면 관리위탁이 실효적인 방법이다. 시설관리공단들도 잘 관리하고 있지만 잔디 보호가 지상명제인 구단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내가 대전을 맡았을 당시 잔디 관리 자체는 잔디 관리 전문회사에 외주를 줬다. 지자체 역시 외주를 주고 있지만 그 입찰에는 일반 조경회사들이 참여해 실제 잔디 관리는 하도급으로 처리하기에 효율성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전이 직접 홈구장을 관리하면서 잔디 생장에 돕는 거액의 채광기 등이 도입됐다. 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잔디를 관리하려면 수십억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다른 구단들보다 한 발 앞선 것이 사실이다.
물론, 관리위탁도 한계는 있다. 지자체가 경기장을 보수 및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 예산을 지원하지만, 코로나19 같은 사태 등으로 수익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단장은 각 구단들이 관리위탁에 나설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영업일은 제한적이다. 지자체는 콘서트 등 대관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잔디가 망가지는데, 이걸 거꾸로 생각해보자. 콘서트로 잔디가 망가진다면 아예 교체할 수 있는 돈을 받고 바꾸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유럽에선 1년에 잔디를 2번 교체한다. 우리도 생각에 따라선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자신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려면 잔디와 관련된 산업도 같이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1999년 프로축구연맹에 입사해 여러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놀란 것은 잔디 산업의 높은 경쟁력”이라면서 “예컨대 일본만 해도 잔디가 쉽게 뿌리를 내리는 롤 잔디가 대세였다. 롤 잔디는 카페트처럼 잔디가 밀려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우리가 뗏장으로 까는 잔디가 4㎝라면, 일본의 롤 잔디는 7~10㎝였다. 당연히 더 비싸겠지만 축구계에 있는 입장에선 너무 부러운 일이었다. 우리도 롤 잔디가 일상화된다면 그라운드에 문제가 생길 때 한 달이면 교체가 가능해진다. 그 날이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