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100년의 시작, 조선 최초 치의 기록

2025-09-10

“올해는 1925년 함석태 선생이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한 이후 100년이 되는 해다. 치과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온 사람으로서 내 자서전은 못써도 조선 최초의 치과의사에 대한 평전만큼은 쓰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치과의사들의 뿌리를 찾고 그 의미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치협 협회사 편찬위원장을 지낸 변영남 원장이 최근 ‘한국 치초의 치과의사 함석태(글나무)’를 펴냈다. 변 원장은 함석태 선생을 연구해온 역사학자, 동료 치과의사, 1920~30년대 신문기사 등을 수집, 정리해 이번 평전을 집필했다.

평전에는 1889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부유한 집안의 독자로 태어난 함석태 선생의 가정환경에서, 치과의사가 된 후 펼친 구강 계몽운동, 사라져가는 문화재 수집 활동, 유치장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찾아가 치과진료를 펼친 애국 활동까지 함 선생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함 선생은 1912년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최초의 한국인 치과의사가 됐다. 귀국 후인 1914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됐으며, 이후 같은 해 6월 19일, 서울 삼각정(현 중구 삼각동) 1번지에 함석태치과의원을 신축 개원했다. 이후 1925년 경성치과의학교에서 첫 졸업생이 배출되자 한국인 치과의사 7명을 규합해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한성치과의사회를 설립,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생전 조선 사람 중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함 선생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진 ‘백자 금강산연적’을 비롯해 도자기 소품을 많이 수집해 ‘소물진품대왕(小物珍品大王)’으로 불렸다.

특히, 금강산연적은 지난 2006년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를 주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북한문화재’ 특별전에서 공개되며 1945년 5월 일제의 소개령에 의해 고향으로 피신했다 다시 남하하기 위해 가족들과 헤어진 후 실종된 함 선생의 흔적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함 선생이 광화문 교보빌딩 앞 비각의 태극문양이 그려진 철제문을 보존했던 이야기는 방송을 통해서도 대중에 알려진 바 있다.

변영남 원장은 “함석태 선생은 단순한 치과의사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작은 문화재부터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려 했다. 또 구강보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한국인들에게 치의학을 알린 선구자”라며 “함 선생은 당시대 소설가 이태준이 편집인으로 있던 ‘문장’지에 ‘공예미’라는 글을 기고한 문장가이자, 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한 애국자다. 이러한 훌륭한 선배의 일생을 동료치과의사들에게 꼭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변 원장은 “치과의사의 위상은 이렇게 우리의 시원, 역사적으로 훌륭한 선배를 널리 알리면 자연히 높아지는 것”이라며 “현시대 치과의사들이 물질적인 것만 쫓지 말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했던 선배의 마음을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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