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 증가에는 한국의 아픈 역사 담겨
영남권을 휩쓴 대형 산불 진화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침엽수림이 많은 한국의 수종(樹種)이 꼽힌다. 소나무 자체가 잘 타는 재질인 데다 기름 성분의 수액인 ‘송진’이 산불에 화력을 더하기 때문이다. 침엽수림은 한국 산지의 약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침엽수를 솎아내고 산불에 저항력이 강한 활엽수로 대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를 숲 파괴 행위로 보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나무를 베면 그 주변 나무들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일반 소나무는 한국의 토종 자생종이지만, 리기다 소나무와 같은 외래종 침엽수림이 산림의 상당 수를 차지한 데는 일제강점과 한국 전쟁, 이후 황폐화된 국토를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던 과거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황폐화된 산림, 침엽수로 속성 복원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도 산림보호 제도가 있긴 했지만, 춥고 배고픈 백성들이 땔감과 건축재로 사용하기 위해 벌채하는 걸 막진 못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을 맞으며 본격적인 산림 파괴가 시작됐다. 일제는 조선의 산림을 자국에 가져가기 위한 수탈 자원으로 봤다. 광복 후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전국 산림의 88%가 황폐화 됐다.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연 보호는 잊혀진 개념이 됐다.

제1차 국토녹화 10개년 계획(치산녹화, 1973∼1982년)을 세웠던 한국 정부는 ‘속성 조림’을 목표 중 하나로 내걸고 신속한 산림 복원에 나섰다. 1차 계획을 보면 밤나무, 잣나무, 은수원사시, 아카시아, 리기다 소나무 등을 권장 수종으로 명시했다.
당시 묘목공급 계획에 따르면 미국산 외래종인 리기다 소나무(6160만 그루)를 가장 많이 심었고, 잣나무(4900만 그루)가 그 다음이었다. 둘 다 침엽수에 해당한다. 이어 낙엽송(4020만 그루), 오리나무(2810만 그루), 아카시아(2490만 그루), 삼나무(1700만 그루), 편백나무(1110만 그루) 등의 순이었다.

지금은 자연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지만, 국토가 황폐화 된 가난한 나라에서는 배고픈 국민을 먹이고(유실수), 농촌 생활을 안정화 하고(연료림), 산업 자원으로 사용(용재림)하기 위해 가급적 빨리 산림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데다 목재와 송진을 공급해주는 최적의 수종이었다.
◆영남권 침엽수림 비율 가장 높아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지는 2020년 기준 침엽수림이 38.8%, 활엽수림 33.4%, 혼효림(두 종류 이상의 수종으로 구성)이 27.8%를 차지하고 있다. 산림청은 5년 단위로 산림기본통계를 발표하고 있어 2020년이 최신 자료다.
침엽수끼리 모여 있고, 활엽수끼리 살고 있는 단일 수종은 병충해에 약하고, 이 중 침엽수림은 산불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1990년대부터는 생태학적 시각을 기반으로 산림을 가꿔왔다. 그 결과 침엽수림 비중은 1977년 48.2%에서 최근 38.8%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침엽수림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번에 대형 산불이 난 영남권의 비중이 특히 높다. 경북이 55만7000ha(헥타르)로 1위고 강원(43만9000ha), 경남(31만3000ha) 순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20년 간 대형 산불을 겪은 지역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선책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산림청은 2022년 ‘경북·강원 대형 산불 시사점 분석 및 개선대책’을 발표하면서 ‘산불 예방 숲 가꾸기’를 2배 가량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숲 가꾸기는 일부 나무를 베고 산림 내 방화선을 만드는 것으로,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인위적 개입이 자연의 회복력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 교수는 “숲 가꾸기란 불에 탈 것을 줄이면 산불이 작아진다는 논리로 나무를 솎아베기 하고 숲의 밀도는 낮추는 인공 조림 정책”이라며 “척박한 숲에서 자란 소나무가 토양에 양분을 만든 뒤 활엽수림이 조성될 여건을 만드는 자연적 전이 과정을 막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산림청은 “숲가꾸기 사업이 산불 방지에 효과를 내고 있다”며 “솎아베기를 통해 나무 간 경쟁을 줄인 뒤 이를 수거하면 산불 발생 위험이 줄어든다”고 반박한다. 김성용 국립경국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숲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는 환경단체의 반발로 나무를 솎아주는 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숲 가꾸기가 필요한데 아직은 미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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