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부동산 숭배의 시대, 부자 혐오의 정치

2025-11-05

“대기업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아이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 요즘 화제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아들에게 하는 대사다. 김 부장의 스펙은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자존심의 상징이던 서울 아파트는 이제 짐이자 지켜야 할 대상이 됐다. 매달 밀려오는 대출이자와 교육비·세금에 허덕이고 후배의 전셋값에 ‘현타’를 느낀다. 이런 김 부장에게 아들이 묻는다. “뭐가 위대한 거예요?”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소설에서 김 부장은 전형적인 ‘꼰대’다. 주변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인 데다가, 오만하기까지 하다. 이런 김 부장의 성정은 자연히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승진에서 밀리고 지방으로 좌천된 김 부장은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퇴직금으로 상가에 투자하지만 큰 손실을 본다.

김 부장의 실패는 어쩐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겹쳐 보인다. 둘 다 ‘부동산 자산 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김 부장에게 아파트는 ‘주거’와 ‘집값 상승’이 전부였지만 3040세대에게 집은 운용 자산이다. 코스피가 5000을 가도 부동산이 더 높은 수익을 내면 돈은 다시 그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제 시장은 그렇게 바뀌었다. 결국 자산을 늘리려는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땜질식 핀셋 규제’와 ‘징벌적 과세’ ‘오락가락 정책’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부정했다.

누구나 교통·학군·커뮤니티가 잘 갖춰진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한다. 또 아파트값이 오르면 더 나은 곳으로 옮겨 자산을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부는 대출을 막고 세금을 부과해 팔기도, 사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규제지역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 공인 ‘부촌’을 만들어버렸다. 정상적인 자산 증식의 욕구를 억누르면 부동산은 ‘그들만의 리그’로 왜곡된다.

수요를 억제해 가격을 낮추겠다는 발상은 욕구를 누르는 정책의 전형이다.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듯하지만 그건 잠시뿐이다. 억눌린 수요는 결국 폭발한다. 더 큰 문제는 정책 불신이 시장 왜곡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반복된 진보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결과다.

수요 억제가 통하지 않으면 다음엔 세금이다. 보유세와 취득세를 올려 수요를 누르려 하지만 시장에는 이미 ‘세금 겁박’보다 더 강한 자산 증식의 욕망이 자리 잡았다. 결국 세금 부담은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에게 전가된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정책이 오히려 부동산 숭배 심리를 자극하는 셈이다.

정책이 통하지 않으면 정치 논리가 개입한다. 다주택자를 불로소득자로 규정하고 보유세 강화와 공시가격 현실화를 ‘조세 정의’로 포장한다. 아직 세금 카드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다주택 공직자의 승진 제한이나 부동산 백지신탁 얘기가 나온다. 강남과 세종에 집이 있는 공무원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논리다. ‘부동산 3인방’으로 불리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공격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공세가 정치적 편 가르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법인세·상속세 감세를 ‘부자 감세’로 몰듯 부동산 역시 ‘부자 대 서민’ 구도로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조짐이 보인다.

정책은 정치 세력의 기반 확장이 아니라 그 자체의 합리성과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0년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화폐 보편 지급을 반대하는 미래통합당을 향해 “부자에 대한 특별한 혐오증이 있는가. 민주정당이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다주택자 등 특정 계층을 압박하기보다 누구든 노력하면 더 나은 거주 환경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근 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 “대만 사람이에요”라고 적힌 배지가 한국 여행의 필수품이 됐다고 한다. 부동산 정책이 여전히 ‘부자 혐오’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머지않아 은마아파트 현관문엔 “난 부자가 아니에요”라는 명패가 붙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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