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기업금융을 전담해오던 은행이다. 한일은 삼성그룹, 상업은 LG그룹의 주거래은행이었다. 두 은행은 외환위기를 맞아 공적 자금을 수혈받고 한빛은행을 거쳐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기업금융에 대한 가치는 지금까지 지켜 내려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41개 주 채무 계열 가운데 11개가 우리은행 담당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2030년까지 전 계열사를 통한 73조 원 규모의 투·융자로 생산적 금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금융그룹 중에서는 첫 발표였다.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는 자금을 기업과 벤처로 돌려 대전환 시기를 맞은 국내 산업을 지원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이 생산적 금융을 통해 ‘기업금융 명가’ 타이틀을 되찾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 회장은 그룹의 방향성을 돌려놓고 불법 대출로 흔들리던 조직의 내부통제를 강화해 안정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임 회장이 취임하기 전인 2022년 말 현재 약 480조 4743억 원이었던 우리금융그룹의 연결 기준 총자산은 올 6월 말 534조 1127억 원으로 11.16% 증가했다. 증가율만 보면 KB금융(11.33%)이나 신한(11.36%) 등 경쟁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순익도 견조하다. 취임 첫해 2조 5060억 원에 그쳤던 그룹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3조 860억 원으로 23.1% 급증했다. 올 상반기 순익은 1조 5510억 원으로 명예퇴직 같은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면 지난해(1조 7550억 원)와 엇비슷한 1조 7480억 원까지 올라간다. 특히 올 3분기의 경우 순익이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통상적인 분기 순익 8000억~9000억 원에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에 따른 효과를 반영한 것이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생명보험사 인수에 따른 영업 외 염가 매수 차익이 반영된다면 1조 원을 큰 폭으로 상회하는 이익 실현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체력도 좋아졌다. 우리금융그룹의 6월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2.76%로 1년 전과 비교하면 0.72%포인트 상승했다. 올 3월 우리투자증권이 투자매매업 본인가를 받고 7월에는 생보사 인수를 마무리 지음으로써 종합금융그룹 라인업을 완성한 것도 그룹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만 해도 올해부터 흑자로 전환해 상반기 순이익으로 171억 원을 거뒀다. 우리투자증권은 올 2분기와 3분기 채권자본시장(DCM)에서 총 52건의 발행을 맡아 1조 1795억 원 규모의 거래를 주선했다. 우리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사의 공동 금융 주선을 늘려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며 “운용자산 50조 원 규모의 보험사를 그룹에 편입해 방카슈랑스 판매를 늘리고 자산운용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우리금융그룹은 현재 생산적 금융으로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다. 임 회장 역시 종합금융그룹 체계 구축을 계기로 생산적 금융에 ‘올인’해 인공지능(AI)과 바이오·방위산업 같은 첨단산업 지원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글로벌 관세·무역전쟁에 노출된 자동차와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꾸준히 지원하고 AI와 반도체 등은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도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실 증가와 수익성 제고 등은 숙제로 꼽힌다. 금융계의 관계자는 “우리금융은 일부 내부통제 문제가 있었지만 이를 빠르게 극복하고 조직이 안정화했다”며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면 국내 산업 발전은 물론이고 그룹 수익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