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청년들과 만나 “모든 문제의 원천은 기회의 부족이고, 기회의 부족은 저성장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뉴욕 방문에서 그는 월가의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록 회장을 만나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유치를 논의했다. 추석 전엔 오픈AI CEO를 삼성, SK 총수들과 함께 만난 뒤 AI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허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AI 산업 발전을 위해 “SK와 삼성이 운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2배 정도 새로 지어야” 하며 “천문학적 재원도 필요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줄어드는 기회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지겠다고 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그가 저성장 경제를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AI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의 문제는 짚어야 한다. 대통령실 직제상 기후환경에너지비서관을 AI미래기획수석 아래에 두고, 농림축산비서관을 경제성장수석 밑에 둔 데서 그의 우선순위가 잘 드러난다. 제대로 된 전력과 물 공급 대책 없이, 지역균형발전 목표에도 역행한 윤석열 정부의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 결정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앞선 청년들과의 만남에서 ‘젠더 갈등’도 결국 성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이민자,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도 적용되는 논리일 것이다. 성장해야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고, 사회적 약자에게 불만의 화살을 돌리는 극우적 목소리도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AI가 성장을 가져오고, 성장하면 기회가 늘어나며, 기회가 늘면 혐오와 차별도 없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우선 AI 성장론이 부풀려졌다는 얘기가 AI 규제가 약한 영미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하이퍼스케일러’, 즉 AI에 대규모 투자를 한 자본이 이윤을 더 커 보이게 하는 회계 처리 방식으로 낙관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블랙록, 블랙스톤 같은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매우 복잡한 투자 기법은 불투명한 측면이 있으며 다음 금융위기가 온다면 이들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월가 자본이 데이터센터 건설에 올인하고 있지만,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AI로 성장률을 올린다고 치자. 그렇다고 기회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노동의 참여 없이 이뤄지는 AI 주도 성장은 기존 디지털 경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 5000’을 주문처럼 외지만 현재 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을 반도체주가 주도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삼성이 홀로 잘나가던 시절을 겪어봤다. 불평등 정도는 더 커졌고 노동자 서민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그렇다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혐오와 차별이 줄어들 거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사회가 좀 더 평등해지기만 해도 혐오와 차별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많다. 사실 식량, 주택, 교통, 교육, 의료, 돌봄 등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은 대단한 경제 성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며, 호혜적인 공동체들을 살리는 것으로 족하다. 경제부 기자로 오래 일한 언론인 안호기가 저서 <성장이라는 착각>에서 내린 결론이다.
무엇보다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근대 산업문명이 지구 생태환경을 망가뜨리고 한계에 달한 지금, 고도성장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엄청난 양의 전기와 물을 잡아먹는다. 전례 없는 폭염과 수해, 가뭄 등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AI 산업 고도화는 약자들과 다음 세대에 더 큰 재앙을 안겨줄 것이다. 성장 집착의 문제는 자원의 집중과 무한경쟁을 강요하며, 사람들이 계속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데 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최근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기회의 부족, 불평등에 대한 집단적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분명한 건 그런 불만이 성장에 대한 집단적 기대하에서 완전히 충족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성장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는 가운데 사람들의 불만이 부조리한 체제를 멈추고 좀 더 협력적이고 생태적인 방향으로 가기보다 개인화, 파편화되고 다른 존재를 배제,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극우의 전진을 막으려면, 성장이라는 착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성장 없이도 좋은 삶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