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과학굴기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우리 학계 역시 그 원천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수의 천재를 길러내는 시스템과 이런 천재들을 귀국시킨 파격적인 지원만 부각되고 있다. ‘인재 전쟁’을 타이틀로 내세운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가 화제였다. 방송은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의 핵심 원동력으로 ‘토종 천재 과학자’ ‘미국 명문대 교수 출신 귀국 과학자’의 개인기를 지목했다. 그 결과 ‘K 천인계획’ ‘K 원사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정말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는 뛰어난 개인의 능력 때문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탁월한 성과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함께 이러한 역량이 충분히 발현하고 승화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무리 우수한 과학자라도 후진적인 시스템 속에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렵고, 이것이 반복되면 과학자들의 해외 이탈은 가속된다.
세계적 관심 된 중국 과학굴기
천인계획과 원사제도 등 주목
무조건 제도 도입은 신중해야
연구생태계 체질 개선이 먼저

귀국 석학들의 신랄한 비판
천인계획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간 수천 명의 학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이가 스이공(施一公) 교수다. 그는 칭화대에서 생물과학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분자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수재다. 졸업 후 프린스턴대 분자생물학 종신교수 재직 중 2008년 천인계획을 통해 귀국한 전형적인 해외 귀국파다. 생명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스이공 교수의 귀국에 전 중국이 열광했다.
그는 2010년 베이징대의 라오이(饒毅) 교수와 함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중국의 연구 문화’라는 글을 통해 인맥 중심의 연구비 배분과 같은 중국 연구 생태계의 카르텔적 행위에 대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선진 과학 생태계를 경험한 해외 유학파들의 빠른 적응, 기존 수혜자들의 개혁 거부와 순응 행태도 도마에 올렸다. 이처럼 신랄한 공개 비판 때문에 그가 눈 밖에 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의 생명과학 굴기의 최전선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비판은 중국 연구개발 생태계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진짜 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한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벌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본질에서 어긋나는지, 지엽적이고 소모적인 성과 평가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미래 과학기술 투자 방향을 사전에 세부적으로 기획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그는 2015년 새로운 사립 연구중심 대학 설립을 제안했다. 3년 뒤엔 항저우에 시후(西湖)대학을 세워 초대 총장에 취임했다. 과학굴기를 위해 사립 연구중심 대학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하며, 그 선봉에 서겠다는 시후대학의 전략을 앞세워 중앙정부를 설득했다.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지방정부도 함께 나섰다. 시후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명공학·재료공학·AI응용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차세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양이 아닌 순수한 질로만 교원 성과를 평가한다. 대학원생 선발 때에도 사전에 지도교수를 신청 없이 학생의 연구 잠재력과 미래 연구 방향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이와 같은 자유롭고 파격적인 제도의 혁신으로 인해 지난 수년간 세계적인 중국계 석학들이 시후대학을 귀국 거점으로 선택했다. 단순히 높은 연봉과 파격적인 대우뿐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기존 중국 대학들이 지닌 경직성을 혁파한 시후대학은 점차 세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스이공 교수의 제자인 옌닝(顔寧) 선전(深圳)의학과학원 교수 역시 중국 과학계의 문제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옌닝 교수는 2004년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칭화대 의생명과학부 교수로 약 10년간 재직했다. 그런 그녀는 2017년 프린스턴으로 돌아가면서 고위험연구 지원을 꺼리는 중국의 연구지원 시스템을 비판했다. 이후 2022년 다시 돌아와 중국 선전의과학원에 부임한 옌닝은 중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성과·성실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기 주도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도전 정신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주입식 교육 시스템의 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 제도 무조건적 모방은 곤란
안타깝다. 우리는 천인계획에서 절대로 배우면 안 되는 것만 배우려고 하고 있다. 몇 명의 과학자를 어떤 조건으로 언제까지 국내로 귀국시킬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중국 역시 천인계획을 통해 기존 연구 생태계와 소모적인 마찰을 일으키거나, 중국의 나쁜 관행에 빠르게 동조하는 인재를 데리고 오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원사제도 역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과학자에 대한 예우는 중요하지만, 원사에 대한 과도한 권한 부여로 인한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은 지금 원사제도의 관료주의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가 대형과제에 청년 과학자의 참여와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우리의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소 중심의 과학 생태계는 오랜 방치, 잘못된 규제, 그릇된 처방으로 상처받고 병들어 왔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천인계획과 원사제도의 껍데기만 들여오려는 지금의 접근은 또다시 우리 과학계의 자원을 낭비하고, 정신을 타락시키며, 혁신을 억압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이공 교수와 같이 비전을 지닌 과학자의 비판과,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행정의 용기다. 연구개발(R&D) 예산이 복원을 넘어서고, PBS(연구과제중심제도) 폐지가 확정된 지금이 우리 연구 생태계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추진할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