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조선,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의 지도를 확보했다. 왜관에 거주하는 상인, 사신, 밀정 등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했고, 이는 조선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반면, 조선은 명과의 협공을 위해 지도와 해도를 적극 활용했다. 역사는 이를 통해 지도가 단순한 지형 정보가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21세기, 지도는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 기술 경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 지도데이터는 단순한 공간정보가 아니라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인공지능(AI) 기반 공간 분석 등의 핵심 인프라가 된다. 그렇기에 구글의 정부에 대한 1대 5000 정밀지도 반출 요청은 단순한 서비스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data sovereignty)과 직결된 사안이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데이터가 곧 시장의 핵심 요소다. 플랫폼 기업들은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문화적 흐름을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설계한다. 지도데이터는 단순한 지형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이동 패턴, 상업적 활동, 도시 구조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포함한다. 현대 사회에서 지도는 단순한 지형의 축소판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삶을 담고 있는 디지털 기반 인프라이다.
조선 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각 지방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정보지 역할을 했다. 현재 네이버 지도 역시 단순한 길찾기 도구가 아니라, 지역 정보와 생활 패턴을 반영하는 또 다른 디지털 플랫폼이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한국인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문화적 맥락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구글은 우리 정부에 1대 25000 축척이 아닌, 오차범위 3m 이내의 1대 5000 축척 지도를 요청했다. 더욱 정밀한 위치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군사시설 보호뿐만 아니라, 세금으로 제작된 공공데이터를 해외 기업이 무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절충안으로 군사·보안시설을 보안 처리한 후 반출을 승인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구글은 이를 거부했다. 지도데이터의 수정은 기업 방침에 맞지 않으며, 글로벌 클라우드 운영 방식상 국내에 별도 서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에도 구글을 포함한 다른 플랫폼사업자들도 지도 반출 요청을 지속해 왔으며, 2025년 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구글에 지도 반출을 허용할 경우, 국내 기업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자체적인 데이터 구축과 유지보수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구글이 우리나라의 정밀지도를 확보하면, 글로벌 플랫폼을 기반으로 더욱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정밀지도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드론 산업 등에서 필수적인 데이터이다. 통신사를 비롯하여, 현대차 등 국내 제조업체들은 독자적인 지도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구글이 지도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의존도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정밀지도의 반출을 허용하면, 정부는 자국 내 주요 지리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는 국가가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글로벌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조정력이 약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구글의 정밀지도 요구는 단순한 지도 서비스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도데이터를 활용해 자율주행, AI 기반 공간정보 분석, 스마트시티 등의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는 결국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사업과도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적 필요에 따라 지도 반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를 허용한다면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동일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지도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기업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단순히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지도를 사용해야 하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제조업체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정밀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산업 경쟁력, 안보가 걸린 중요한 자산이다.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지도데이터를 전략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만큼, 정부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는 산업적·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고려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 통제권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정부가 지도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