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면 감사 시즌이 도래한다. 한 해 살림은 잘 살았는지, 관련 예산과 정책은 적절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시기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국정감사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하는 행정사무감사가 마무리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연도 예산(안)이 주목을 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2025년 총지출 예산(안)은 677조4000억 원이다.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된 금액이다. 그나마 법으로 강제하는 의무지출 증가 정도가 유의미하다. 의무지출의 상대적 개념으로 언급되는 재량지출은 0.8% 증가에 그쳤다. 국민을 향한 윤 정부의 의지가 0.8% 수준이다.
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따른 복지 예산(안)을 살펴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약자 복지”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해진다. ‘누구부터 누구까지’를 약자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2025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125조7000억 원으로 정부 총지출 예산의 18.5%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57.7%는 일반 예산이고 42.3%는 기금으로 구성됐다. 일반 예산은 전년 대비 5.3%, 기금은 10.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예산이 아니라 각종 기금이 보건복지부 예산 증가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사회복지 예산(안)을 살펴보면 공적연금이 49조3000억 원으로 40%(39.2%)에 이른다. 공적연금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별정우체국직원연금을 모두 포함한다. 역대 정부가 매년 복지 예산을 대폭 증가시켰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각종 공적연금 증가분이 섞여 있다. 내년도 예산안 역시 보편복지 개념에 가까운 공적연금이 전년 대비 11.3%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더 벌고 더 내면 더 받는’ 공적연금. 약자 복지를 강조하는 정부에서 고소득층과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공적연금 증가분이 가장 높다는 건 그들의 주장이 허위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재량예산이다. 재량예산 증가분은 결국 분야별 예산(안)을 뒤져봐야 나온다. 복지 예산 카테고리별로 살펴보면 노인이 27조5000억 원, 기초생활보장이 18조7000억 원, 취약계층 지원이 5조5000억 원, 아동보육이 5조2000억 원, 사회복지 일반이 1조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증가분 순위대로 살펴보면 취약계층 지원 7.3%, 노인 7.2%, 기초생활보장 4.1%, 사회복지 일반 2.1% 순이다. 아동보육 예산은 전년 대비 5.9% 감소했다. 일부 보육예산이 교육부로 이관되고 출생률 감소가 이유로 추정된다.
취약계층 지원의 대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의 경우 전년 대비 5% 증액됐다. 9.3% 증가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매년 달라지는 기준중위소득 인상폭을 반영한 예산이 1조 원 수준이다. 약자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남아있는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는 2025년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 부양을 확인하기 어려운 부양의무자로 인해 지원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계상 방식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하면서 저소득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은 증가하고 그만큼 가처분 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보육예산’은 전년 대비 2.38% 감소한 10조6000억 원이다. 그나마 보육예산은 계층화, 서비스 공급 취약성, 사업 지속성, 재정 불안정성 증가 같은 문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세 이하 영유아를 양육할 때 지급하는 부모급여가 월 100만 원으로 증액된 점은 긍정적이다. 어린이집에 전적으로 맡겨왔던 문화를 가정양육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바람직한 동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23%에 그쳤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큰 폭으로 감액됐다. 여전히 민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보육 인프라 관련 예산은 각종 특별회계에 편입시키면서 보육사업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동·청소년’ 예산은 2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여성가족부와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다부처 예산 역시 0.9% 감소했다. 핵심 요인은 출생률 저하라고 하지만 실제 지방자치단체 보조율 감소가 중대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출생률이 낮으면 그만큼 예산을 더 반영해서 반등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추세와 수치만 보고 기계적으로 줄이는 탁상행정은 여전하다. 그나마 아동·청소년 예산 증가분은 인건비 증가, 적용 대상자 확대 같은 양적 이유가 주를 이룬다. 체감도가 높은 서비스 단가 증액 같은 질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은 우리 사회 대표적인 약자다. 약자 복지가 행방불명인 이유가 여기서도 확인된다.
이승진 나은내일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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