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독일 공영방송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려다 취소했다. <인사이드 코리아: 중국과 북한 그늘 아래의 국가 위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지난달 25일 방송사 홈페이지에 미리 공개된 바 있다.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과도하게 담고 있다. 한국의 국가 위기에 미국·중국·북한 간의 권력 투쟁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윤석열 지지가 51%, 반대가 47%라고 알렸다. 외교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일방적 주장에 대한 교민과 시민단체의 항의가 잇따랐다. 결국 방영을 취소하고 홈페이지에 올린 다큐멘터리도 삭제했다. 우발적 에피소드로 보기엔 찜찜하다.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가 뉴라이트 세력의 ‘초국적 연결망’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가 유럽에서 발흥한 역사는 꽤 길다. 시작은 1960년대 후반에 출현한 프랑스의 뉴라이트(Nouvelle Droite)다. 1970년대에 ‘진지전’을 우익화한 그람시 우파가 뉴라이트 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의회 밖 사회운동과 같은 ‘기동전’이 아니라 상식에 공명하는 대항 헤게모니 형성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상과 문화적 가치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심원한 변화를 추구하는 ‘메타정치’를 표방했다. 20세기 말까지 이탈리아(Nueva Destra)와 독일(Neue Rechte)을 비롯해 스페인·벨기에·이스라엘·러시아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한 뉴라이트는 모두 유사한 메타정치 전략을 채택했다. 출판물, 연구 집단, 콘퍼런스, 전선 조직, 온라인 플랫폼 네트워크를 망라한 초국적 연결망을 구축했다. 이러한 연결망은 1980년대 미국 우파에게로 확장돼 오늘날 트럼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초국적 뉴라이트 연결망은 한결같이 보편적 정의, 평등, 인권이라는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에 반대한다. 뉴라이트가 볼 때 자유주의 엘리트는 세계화의 기치 아래 민족, 계급, 부족, 인종, 종교, 친족 등과 같은 전통적 정체성을 ‘인간’ ‘인류’ ‘하나의 세계’와 같은 보편적, 범세계적 정체성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뉴라이트는 이러한 정체성이 자유주의 제도를 장악한 엘리트의 이해관계를 고상하게 꾸민 허위의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뉴라이트는 세계화가 야기한 경제적 뿌리뽑힘을 문화적 분노로 전환시키는 데 힘을 쏟는다.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국경 개방, 경제적 세계화를 만든 자유주의 가치와 제도가 서구 문명을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고 비판한다. 개인의 도덕적 온전성의 뿌리가 되는 전통 가치와 제도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존재해온 원형적 정체성을 되살려 자유주의 가치와 제도를 대체해야 한다.
한국도 뉴라이트의 초국적 연결망 안에 포섭된 지 꽤 오래됐다. 북한과 중국을 1948년에 건국된 ‘신생국’ 대한민국의 원형적 정체성을 훼손한 주적으로 간주한다. 대한민국을 미국·일본·이스라엘과 하나로 묶어 원형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학계에 뉴라이트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역사 관련 중요 기관장에 뉴라이트 인물을 배치해 역사관을 바꾸기 위한 메타정치를 펼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고 인권을 무력화하는 연결망을 구축한다. 진지 구축에 성공했다고 여기고 아예 국회를 점령하는 기동전을 펼친다. 이에 발맞춰 법원을 습격하고 헌법재판소를 위협한다. 메타정치에 물든 각료와 검찰은 물론 국민의힘까지 내란 동조에 나선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내란은 대한민국만의 일이 아니다. 초국적 뉴라이트 연결망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다. 대한민국이 꺾이면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헌법재판소는 어서 ‘민주주의 문명의 준거인 헌법’에 의지해 윤석열 내란 수괴를 파면하여 전 세계에 희망을 전파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