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의 방식은 다양하다. 매장, 화장, 수장, 풍장 등 나라나 종교에 따라 망자를 사후세계로 보내는 방식은 달라진다. 이 중 매장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장례법이다. 유교 문화권뿐 아니라 기독교 등 부활의 내세관을 믿는 종교에서는 사후에 영혼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특히 매장을 선호한다.
반면 힌두교에서는 화장을 선호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빠른 시간 내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몸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 그 영혼이 불길과 함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간다고 믿어서다. 이런 화장문화는 불교의 장례문화와도 연결된다. 불교에서의 화장은 석가모니의 장례부터 등장하는데 현대사회에서 화장을 통한 납골장과 수목장 등의 문화로 이어진다.
장례가 망자를 보내는 의식이라면 장례문화는 살아 있는 사람과 망자와의 이별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교 장례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예절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로 장례문화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에서 대부분 장례를 치렀으나 이제는 집에서 사망하더라도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그러면서 어느새 장례에서마저 망자의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외국 영화 등에서 나오는 장례문화는 되짚어 볼 구석이 적지 않다. 특히 함께 살아온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고인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이 서로 겪은 일화를 이야기하며 고인을 추억하고 함께 슬픔을 공유하는 장면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 장례 문화도 이런 식으로 고인의 생전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이런 가운데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뒤 『트렁크』라는 파격적인 시집을 내놓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김언희 시인이 최근 후배 시인들과 경남 진주에서 ‘살아 있는 장례’를 치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흔이 넘은 김 시인이 7번째 시집인 『호랑말코』 출간을 겸해 한 설치미술 작가에게 저작권료 형태로 받은 1000만원으로 자신과 인연 있는 후배 시인과 지인들을 차례로 불러 술을 곁들인 음식을 대접하면서 미리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조문객이 된 후배들은 생소하지만 그래도 아직 건강한 모습일때 선배 시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과연 좋은 죽음(웰 다잉)이 있을까 싶다가도 지나온 자신의 삶과 남은 자신의 시간을 고요히 되돌아보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죽음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언제 죽을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지만, 이별의 방식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