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쓰기와 소각장

2025-03-06

‘긴쓰기’를 들어보거나 해본 적 있는 분? 긴쓰기는 깨지거나 이가 나간 도자기를 옻으로 이어 붙이고 그 이음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 그릇 수리 기법이다.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을 넘어 깨지고 다친 상처의 흔적에 금가루를 뿌려 눈부시게 장식한다. 요즘은 깨진 그릇을 스스로 수리해보는 긴쓰기 워크숍도 종종 열린다. 보통 워크숍 참가비가 새 도자기 구입비보다 비싸지만, 깨진 그릇을 고쳐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망원동 ‘리페어 카페’도 매달 긴쓰기 워크숍을 여는데 금세 마감된다.

고급 공예인 긴쓰기를 알게 된 계기는 ‘쓰레기 투어’ 때 방문한 소각장 덕분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속에는 800도 이상 고열에도 타지 않는 도자기와 내열유리 등이 섞여 있다. 활활 태워봤자 소각장 연료만 낭비한다. 종량제 봉투에서 이런 불연성 쓰레기를 골라내면 소각장 용량이 그만큼 늘어난다. 쓰레기양을 줄이면 신규 소각장을 짓지 않아도 된다.

가정에서 나오는 불연성 쓰레기는 내열유리와 도자기 외에 고양이 배변 모래, 페인트 통, 어패류 껍데기 등이 있다. 그래봤자 그 양이 얼마나 되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봉투에서 불연성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골라내면 소각량이 약 1000t이나 줄어든다고 한다. 1000t이라니요! 2026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추가로 다급하게 필요한 서울시 소각장 용량인 900t을 커버하는 규모다. 유리, 도자기 등 불연성 쓰레기만 걸러내도 무게 기준으로 약 절반의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소각 전 종량제 봉투 속에서 불연성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솎아내는 과정을 ‘쓰레기 전처리’라고 한다. 부산의 한 소각장에서 쓰레기 전처리 시범사업을 한 결과 소각장 용량이 늘어났고 처리시설당 약 4000만원의 운영비도 줄어들었다. 그뿐 아니다. 깨진 도자기를 뜨거운 소각 열에 태우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해 무해한 도자기가 유독한 쓰레기가 된다. 안타깝게도 전처리 시설을 갖춘 소각장은 거의 없다.

거대한 인형 뽑기처럼 생긴 크레인이 한 번에 3t의 쓰레기를 들어 올리는 소각장을 다녀온 후에도, 나는 그릇을 안 깨는 차분한 사람은 못 됐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간 컵을 예전처럼 쉽게 버리지 못하게 되었고 차곡차곡 그릇의 무덤을 만들다가 긴쓰기를 알게 되었다. 상처의 결을 사포로 문지르고 옻칠로 붙이고 흉터에 금칠을 하며 우아한 치유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릇도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 같았다. 소각장 신설 문제로 싸우며 생채기가 났던 이탈리아 카판노리와 일본 가고시마도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쓰레기 포화 상태에서 오랫동안 소각장 신설에 반대한 끝에 쓰레기 제로 마을로 전향했다. 카판노리는 유럽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도시가 됐고, 가고시마는 20년째 일본에서 부동의 재활용률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 곳은 약 90%까지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하고 쓰레기를 줄이면서 소각장을 짓지 않고도 건재한 마을을 보여주었다.

서울에는 깨지거나 버리는 도자기를 보내면 그 도자기를 흙으로 되돌려 화분을 만드는 ‘아누’라는 회사도 있다.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재활용 화분이 탄생한다. 쓰레기봉투에서 도자기를 건져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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