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 HBO, 아마존 등 유명 OTT를 살펴보면 인기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 애니메이션들이 쏟아지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폭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나올거면 차라리 만들지 말라는 항의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게임 팬들에게 금지어라고 할 수 있는 우베볼 감독이 있겠네요.
하지만, 요즘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은 꽤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촬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기대했던 모습과 달라서 실망하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하긴 합니다만, 예전보다는 성공확률이 꽤 높아졌거든요.
전 세계 OTT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넷플릭스만 봐도 성공 사례가 꽤 많습니다.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을 이끌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를 소재로 한 아케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작화, 스토리, 연출, 캐릭터 등 모든 면에서 호평받으면서, 전 세계 52개국 탑 1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시즌2까지 방영됐습니다. 원래는 설정면에서 원작과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아케인이 워낙 많은 인기를 얻다보니, 원작 배경 설정을 아케인에 맞춰서 변경했다고 합니다.
망해가던 게임을 살린 작품도 있습니다. 지난 2023년 많은 게임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사이버펑크2077’을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 러너’입니다. 출시 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사이버펑크2077’은 출시 후 각종 버그와 비구현된 콘텐츠로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전형적인 과대 광고 게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를 소재로 만든 ‘사이버펑크 엣지 러너’는 원작의 세계관을 더욱 매력적으로 구현하면서,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 원작이 폭망하면서 기대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대단한 결과입니다.
덕분에, 여전히 버그 투성이었던 원작에 대한 관심도도 다시 올라가면서 순위 역주행을 했고, 애니메이션과 같이 공개한 1.6 업데이트, 그리고 그 뒤에 공개된 확장팩 팬텀 리버티로 잃었던 신뢰를 되찾으면서, 압도적으로 부정적으로 시작했던 게임 평가가, 이제는 대체로 긍정적까지 회복했습니다. CDPR 개발자들은 ‘사이버펑크 엣지 러너’를 흥행시킨 스토디오 트리거의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네요.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실제 배우들이 등장한 드라마도 성적이 괜찮았습니다. CDPR의 대표작 ‘위쳐’ 시리즈를 드라마화한 ‘위쳐’는 슈퍼맨으로 유명한 헨리 카빌을 앞세워 많은 인기를 얻은 덕분에 스핀 오프 포함 4개의 시즌이 방영됐습니다. 특히 헨리 카빌은 원래부터 ‘위쳐’ 시리즈의 광적인 팬이라고 하더니, 게롤트가 그대로 살아난 듯한 미친 싱크로율을 선보였네요.
다만, 방영 내내 PC(정치적 올바름) 이슈로 고생하더니, 시리즈를 멱살잡고 끌고 가던 헨리 카빌도 시즌3로 하차했고, 스핀 오프로 방영된 블러드 오리진은 최악의 평가를 받으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있는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는 베다스다의 유명 게임 ‘폴아웃’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사용자가 많지 않은 OTT라서 관심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폴아웃 게임 팬들이 많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원작의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제대로 살린 소품들과 연출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하네요. 시즌1 공개 일주일만에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고 하니, 반응이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덕분에 출시된지 9년된 폴아웃4가 역주행을 했습니다. 드라마가 공개된 주에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에 올랐고, 2016년 이후 가장 많은 접속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폴아웃4뿐만 아니라, 폴아웃76, 폴아웃 뉴 베가스, 폴아웃3까지 판매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드라마 덕을 제대로 본거죠.
아마존은 일본 세가의 유명 게임 ‘용과 같이’ 시리즈도 드라마로 방영했는데, 이것은 아쉽게도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조용히 묻혔습니다. 그래도 ‘폴아웃’으로 재미를 봤으니, 다른 게임 IP를 찾아서 계속 도전할 것 같네요.
HBO는 게임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매력적인 시나리오라는 평가를 받았던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를 드라마화해서 많은 화제가 됐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2’의 충격 이후 방송된 작품이라 걱정이 컸지만, 게임 원작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에서 24개 부문 노미네이트 됐고, 8개 부문 수상을 한 작품이 됐습니다.
3화에서 예상 못한 강도 높은 동성애 장면으로 많은 논란이 되긴 했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원작 못지 않은 몰입도를 유지한 것이 호평의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만달로리안 시리즈로 유명한 페드로 파스칼이 조엘 밀러의 복합적인 면모를 잘 살린 것이 인상적입니다. 시즌1이 워낙 호평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시즌2 제작도 발표됐는데, 열성 팬조차 등 돌리게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처럼 많은 OTT들이 게임 IP를 드라마화하는 것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OTT구독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쟁사들을 누를 수 있는 화제성 높은 작품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보니, 스토리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검증되어 있고, 뚜렷한 팬층이 확보되어 있는 소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이 주요 대상이었지만, OTT의 주요 타겟층인 요즘 세대들은 소설이나 만화보다 게임에 더 익숙한 세대입니다.
또한, 게임쪽이 영상화하기 더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상상에 맡겨야 하는 소설과 만화와 달리, 이미 주요 장면들이 3D 컷신으로 구현되어 있어, 얼마만큼 원작에 충실하게 구현했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도 같은 조건이긴 했으나, 그때는 플레이 타임이 20~30시간이 넘는 게임을 2시간도 안되는 분량의 영화로 압축하려다보니, 스토리의 빈틈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 약점이 됐습니다. 하지만, OTT 드라마에서는 이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작비만 뒷받침된다면 편수를 늘리면 되는 거고, 인기 있으면 바로 시즌2로 이어가면 되니까요.
예전에는 우베 볼 감독처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제작진이 제작을 맡아서 수준 이하의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폴아웃이나, 라스트 오브 어스를 보면 그 게임을 잘 아는 팬들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수준이 점점 더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현재 제작중이라고 발표된 갓오브워, 바이오쇼크, 어쌔신 크리드, 매스 이펙트 드라마도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