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수술 피보험자 '분통'... DB손보, 자체 자문 후 "뼈에 멍든 것"

2024-07-03

교통사고로 '압박골절'... DB손보는 "인정 못해"

금융소비자단체, '의료자문'에 비판 목소리

의료자문 통한 보험금 일부지급률 높은 수준

"의료자문, 보험사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 송모씨는 지난해 9월 중부고속도로에서 앞차의 급정거로 인해 예기치 못한 후미추돌 사고를 당했다. 이후 병원에서 흉추압박골절 진단을 받고, 골시멘트 삽입과 척추성형 등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프로골퍼 출신으로 골프교습업에 종사했던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끝내 일을 그만 둬야 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대측 차량 보험사인 DB손해보험이 송 씨의 압박골절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보험금 지급이 기약없이 미뤄지게 된 것. 보험사측에서 송 씨에게 서명을 요구해 받아 간 ‘의료자문 동의서’가 화근이었다.

송 씨는 수술받은 병원 외에 서울 대형종합병원에서 ‘압박골절’이 맞다는 진단서를 재차 받았음에도, DB손보는 자문을 의뢰한 병원의 소견서를 내세우며 치료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서 DB손보측 담당자가 송 씨에게 남긴 말은 “골절이 아니라, 뼈에 멍이 든 것”이라는 황당한 한마디였다.

DB손해보험이 보험금 지급액을 축소하기 위해 의료자문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제보자 송 모씨의 위 사례 외에도 DB손보에 대한 보험금 지급 관련 소비자 분쟁이 꾸준히 불거지고 있어서다.

의료자문 제도의 도입 취지는 보험사기 및 보험금 과잉 청구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류를 통한 진단인 만큼, 의사의 실제 대면 진료와 비교하면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제보에 따르면, 사고로 수술을 받은 송 씨는 “의료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DB손보의 동의서 요구에 응했다. 이후 송 씨가 받은 자문서에는 ‘사고 당시의 차 상태로 볼 때, 사고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흉추골절이 발생할 정도의 경우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사고 당시 사진을 통해 자동차 후미의 손상 정도를 보고, 이를 골절 여부 판단의 일부 자료로 사용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당 차량의 뒷 범퍼를 탈거한 사진에는 프레임은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움푹 구겨진 모습이 발견된다. DB손보가 이러한 정황 등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차량 외관의 모습을 근거로 삼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송 씨측 주장이다.

송 씨가 지난해 10월 초 외래진료를 통해 검사를 받은 모 대형 종합병원 진단서는 골절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흉추부 자기공명영상검사 결과를 담고 있는 해당 진단서에는 ‘범발성 특발성 골격과골 및 제9·10 흉추 척추제 전방 압박골절, 급성 골수부종 동반’ 등이 적혀 있다.

반면, DB손보측 의료자문은 ▲신경외과 전문의에 의한 내부 자문 ▲서울소재 3차의료기관(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자문 등 각각 1·2차로 시행됐다. 의료자문에 따른 진단명은 골좌상 정도의 손상인 ‘흉추염좌’ 소견이다. 해당 자문서는 골절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척추 신경성형술 등의 치료조차 ‘사고와 무관한 개인 치료의 목적’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송 씨측은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서를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2023년 6월부터의 내역을 보면, 사고 이전에는 척추 관련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 사고가 아니었다면 받지 않았을 치료였음에도, 이를 마치 개인적 치료목적의 보험금 요구로 왜곡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송 씨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도 아니고, 얼마나 아팠으면 수술대까지 올라갔겠느냐”며 “골절이 아니라는 의료자문서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다른 대형 종합병원에서 골절이 맞다는 소견까지 받았으나, DB손보는 이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DB손보는 어떤 방법으로든 제가 입은 피해를 줄이려는데 일관하고 있고, 자문서에도 그러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세상에서 이런 불의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기를 희망해 저와 같은 의료자문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일부 금융소비자들은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사에게 유리하게 적용돼, 피보험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보험금 지급심사임에도, 석연찮은 의료자문이 되레 소비자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DB손보에 대한 보험금 청구건수는 총 632만1807건이었다. 이 중에서 3941건(0.06%)의 의료자문이 실시됐다. 또한 ▲'의료자문을 통한 부지급률'은 9.16% ▲‘의료자문을 통한 일부지급률’은 31.18%였다. 이 같은 일부지급률은 공시된 16개사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도 DB손보의 의료자문실시율은 0.06%로 상반기와 같았지만,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률과 일부 지급률은 각각 9.57%, 28.45%를 나타냈다. 부지급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일부지급률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DB손보가 의료자문에 동의한 10명 중 3.5명에게는 보험금을 ‘깎아서 줬다’는 얘기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자문과 관련한 분쟁은 매년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금융소비자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집단행동으로도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DB손해보험 실손의료비 부지급 피해자 모임(이하 디피모)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DB손보 본사 앞에서 의료자문 폐지 집회를 가졌다. 환자가 질병 발병 후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진료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가 진료 내용을 의심, 부정하는 내용의 ‘의료자문'을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비영리 민간 금융 소비자 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도 보험사들의 ’의료자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연맹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보험사들의 의료자문 건수는 연간 8만건에 달했고, 의료자문료만 건당 20만원씩 총 160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사에게 유리한 소견서가 발급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맹은 보험사들의 ‘자문의 제도’ 자체를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의료법 제17조에는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지 못한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면서 연맹은 “보험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자문 의사들은 의료법을 위반해 환자를 보지도 않고 진료기록만으로 소견서를 발행했다”며 “의료자문료는 보험사와 자문의가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자문소견을 작성해 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의료자문'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제도 개선은 요원하다. 피보험자가 의료자문 결과에 불복한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결국 소송밖에 답이 없는 실정이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만큼, 피보험자가 보험사 의도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2021년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는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의료자문 절차가 금융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강제성이나 별다른 처벌 기준 없이 단순 '권고'에 그치고 있어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기준의 제3조(일반원칙) 1항에는 '보험회사는 의료자문이 보험금 부지급 또는 삭감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3항에서도 '보험회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하여서는 아니되며, 보험계약자 등이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A손해사정사는 <시장경제>와의 통화에서 "최근 일부 보험사들이 제3의 업체를 끼고 의료자문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불공정한 행태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보험사와 병원 외 제3의 업체에게 가입자의 정보가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자문 소견서는 보험금 지급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의료자문은 서류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작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DB손보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약관 조항인 점등을 고려할 때, 의료자문 제도를 보험사가 유리하게 악용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DB손보 관계자는 “피해자의 의학적 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전문의에게 의료자문을 의뢰하고 있으며, 의료자문 결과에 대해 피해자에게 동의를 강요하거나 압박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의료기관 산정에 있어 협의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최근 피해자 개인정보보호등의 사유로 인해 피해자측에서 의료기관을 선정하고 있는 추세”라며 “그 판정에 다툼이 있을 경우 보험금 청구권자와 보험회사가 협의하여 정한 제3의 전문의료기관의 전문의에게 판정을 의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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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표 기자 yukp@meconomynews.com

원칙이 곧 지름길. 재계·中企·소상공인 정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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