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9월 국회 회의장 한켠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ChatGPT)와 첫 대화를 나눴다. 전현희 의원의 스마트폰을 통해서였다. 전 의원이 “챗GPT 너무 좋은데 왜 아직 안 쓰시냐. 얼른 사용해보시라”며 시연을 보이자, 흥미를 보인 이 대표가 전 의원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어 직접 “전현희 의원이 차기 서울시장이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요”라고 질문하자, 챗GPT로부터 “이 대표의 뜻이 중요합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를 신통하게 여긴 이 대표는 그 길로 월 20달러(약 2만9000원)의 유료 서비스인 ‘챗GPT 플러스’에 가입했다고 한다.
이후 이 대표는 시시때때로 챗GPT를 활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서 “저는 자료 조사나 분석을 보좌진보다 챗GPT 더 의존한다”며 “모든 국민에게 무상 의무교육을 해 한글과 산수, 기초 교양을 가르치는 것처럼 모든 국민에게 AI 활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썼다.

최근 이 대표의 초점은 AI 활용뿐 아니라 AI 산업 전반으로 향해 있다. AI 전문가이자 당 정책 소통플랫폼 ‘모두의 질문Q’를 이끄는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으로부터 주로 조언을 받아 왔다고 한다. 친명계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박 센터장을 ‘AI 조언가’로 삼고 AI 산업 전반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 왔다”며 “이미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AI 산업 관련 토론회를 자신 있게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와 박 센터장의 인연은 2022년 대선 준비 과정에서 시작됐다. 박 센터장의 저서 『눈떠보니 선진국』을 인상 깊게 읽은 뒤, 박 센터장에게 직접 전화해 조언을 구한 게 두 사람 인연의 시작점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박 센터장은 민주연구원에 합류했다.
논란이 된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한국에 하나 생겨서 (지분을)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올 것”이란 이 대표의 발언도 지난 2일 박 센터장이 진행한 민주연구원 유튜브 방송에서 나왔다.

“사회주의적 망상”(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란 여권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 대표는 7일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AI 강국위원회’ 출범식에서 “엔비디아 같은 거대 첨단 미래 기업을 하나 만들어 정부 단위, 국민 단위로 초기 투자를 대규모로 하고 그 지분을 제대로 확보한다면 굳이 연금을 저금하느라 고생을 많이 안 해도 미래가 불안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여권의 엉터리 반격 때문에 오히려 국민이 (AI 분야에) 관심 갖게 돼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AI 산업은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겨냥해 앞세운 성장 담론의 핵심으로 ‘50조원 국부펀드’ 구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6일 “기업과 연기금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국민참여형 펀드를 최소 50조원 규모로 조성하고, 기업이나 채권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며 “펀드에 투자하면 그 배당을 국민이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가 AI 데이터센터 설립’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은 사흘 뒤 발표한 자체 추가경정예산안에 약 3조원 정도의 관련 예산을 배정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AI 산업 구상은 기본사회 류의 정책이 아니라 대만이나 중국 같은 국가적 투자 중요성에 방점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의원들도 AI 산업 공부가 한창이다. 당 경제 공부 모임인 ‘경제는 민주당’은 지난달 25일까지 총 15차례의 강연을 진행해왔고, 이 가운데 네 개가 AI 산업 관련이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열정적으로 AI 산업을 파고들고 있다”며 “이 대표가 강조한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AI 산업 정책의 지원과 집행에 대한 액션플랜을 당 차원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AI 산업은 조기 대선의 핵심 어젠다”라며 “AI 비전만큼은 여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당의 의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