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학적인 질문

2024-12-10

21세기의 시작점에서 25년이 지났기에 한 온라인 서점에서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최고의 책 10권을 묻는 기획을 하고 있다. 시간대는 넓다. 하지만 그 시간을 되짚는 사람의 보폭은 좁고 멀리 못 간다. 좁은 것은 다행히 종종 깊고 짙다. 이 질문은 사실 이런 것일 수 있다. 당신은 지난 25년을 어떻게 살아왔고, 수많은 현실 속에서 어떤 지적 다툼을 지표로 삼아왔는가? 모든 개인은 자신을 일반적인 통계와는 별개의 존재라 여긴다. 따라서 양 속에서 질을 찾아내는 것, 수십만 권을 뒤로 물리고 단 한 권을 꼽는 것은 독자의 기억에 달라붙은 대체 불가의 존재를 고백하라는 다그침이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책의 상당수는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하며 불길함을 느꼈던 독자는 갑자기 소비자에서 감식가의 지위로 올라선 기분을 느낀다.

21세기 최고 책을 꼽는다는 건

삶이 떳떳했는가의 질문이면서

어둠을 빛으로 만든 존재 물음

‘읽기’가 없으면 삶이 앞으로 나가는 것 같지 않은 내게 최고의 도서는 읽기와 쓰기에 관한 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10권 속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블랑쇼의 『우정』이다. 바르트, 뒤라스, 푸코는 자기 글쓰기의 시원으로 블랑쇼를 들었다. 그는 다른 작가들이 써야만 하는 글을 앞서서 대신 썼다.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번역된 것은 21세기 한국 출판계의 큰 성과다. 그중 한 권인 『우정』에서 블랑쇼는 바타유를 비롯해 여러 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안에 자신의 정신을 섞어 넣으며 우정이란 단어의 의미를 바꿔놓는다. 우정은 사귐이다. 다만 그것은 눈 맞춤과 손을 맞잡는 것, 껴안는 것으로 깊어진다거나 사교활동으로 생겨날 수 없다. 여기에는 읽기와 쓰기가 개입되어야 한다(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로, 인간의 가장 깊은 사귐은 시공을 초월하는 데서 올지도 모른다). 너와 나 사이에 글이 결여되어 있다면 거기서 교환되는 감각, 정서, 지성은 재해석이라는 드넓은 지평을 얻지 못할 것이다. 글은 우정의 입구이자 출구이고 우리는 서로의 ‘문체’를 흠모하게 된다. ‘글을 쓰지 않는 고급 독자’라는 말이 모순이듯이, ‘읽고 쓰지 않는 이들 간의 깊은 우정’도 아이러니라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이것이 21세기에도 독자들이 여전히 블랑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지난해 초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을 처음 읽었을 때 우연히 뒤라스를 함께 보고 있었다. 책에서 문득 뒤라스가 베케트를 언급하는 구절과 마주쳤다. 뒤라스가 베케트의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듣는다는 내용이었다. 둘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술 마시기, 그것도 종종 죽도록 마시기, 그건 또한 어린 시절의 영역을 되찾는 것,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것, 낙엽송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일.” 한 해가 지난 올해 3월 나는 『뒤라스의 글쓰기』를 편집할 때 우연히 또 베케트의 『세계와 바지/장애의 화가들』을 읽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두 해가 겹쳐지는 가운데 둘의 관계를 우정 비슷한 것으로 새기면서 나를 그들 사이에 슬쩍 끼워 넣기도 했다.

어떤 우정들은 글 위에서 싹트고 글 속에서 영글다가 육체의 소멸과 함께 글로써 영원성을 보장받는다. 그런 면에서 편지글은 오늘날 마땅히 부활할 가치가 있다. 더욱이 회신을 전제하지 않는 편지 역시 깊고 소중하다. 발신인이 수신인으로부터 이미 지대한 영향이나 감화를 받았다면, 발신인의 내면에서 둘은 섞여 하나가 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사울의 아들’ 감독인 라슬로 네메시에게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이 보낸 서신 한 통은 『어둠에서 벗어나기』라는 책 한 권이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농도 짙은 우정의 예시일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존더코만도’를 다룬 네메시의 ‘사울의 아들’은 “미적, 서사적 도박”의 결과물인데, 이 영화를 분석하는 위베르만의 편지글 문장도 모순과 도치가 이뤄내는 불협화음의 미(美)를 최대치로 구현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쓴 도박에 안전한 문장은 짝패가 될 수 없다. 상대에게 격식을 갖추는 일은 나의 형식이 갈고닦여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형식은 외면이 아니고 내면이며, 문체는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최고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은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떳떳했는가, 시련에 휩쓸리지 않고 책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았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25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고, 그러니 다들 에두르는 길을 거쳤을 것이다. 이때 책을 통해 멀리 돌아간 사람일수록 독후감을 느낌의 잔여물로만 남기지 않고 사고 활동의 중심으로 삼았을 것이며, 없던 형식도 갖추게 됐을 테고, 그런 문장으로 누군가와의 우정을 다졌을 것이다. 즉 25년, 10권 그리고 1권이라는 이 딱딱한 숫자로만 이루어진 질문은 독자의 내면으로 직진해 당신의 어둠을 빛으로 만든 단 하나의 존재가 무엇이었냐며 캐들어가는 가장 묵직하고도 미적인 물음일지 모른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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