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처음 이상 징후를 감지한 것은 55세였던 2006년 여름이다. 눈앞의 장미에서 향을 느낄 수 없게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있지도 않은 빵 냄새를 맡게 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후각 손상이 신경 쓰이던 저자는 6년 뒤인 2012년 당시 유행했던 유전자 검사를 받고 자신에게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70세가 됐을 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50%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2015년 저자는 실제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알츠하이머는 심각한 기억 장애를 일으키는 치매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10~20년 전 발병한다. 하지만 환자 대부분은 병이 상당히 진행돼 사실상 홀로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마지막 단계에 병원을 찾는다. 별다른 치료약이 없기에 이후로는 속수무책이다. 기억의 상실 등이 가속화된 끝에 진단 후 8~10년 안에 사망한다.
저자는 전문 지식 덕에 증상이 거의 없던 극초기 이 병을 발견한다. 저자의 당시 검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인지 영역에서 평균보다 더 뛰어났을 정도다. 그러나 스스로는 이름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미묘한 기억력 문제로 심란했다. 치매 환자를 치료해온 의사로서 기억 착오나 판단 실수 등 질병이 가져올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기도 했다. 그래서 2013년 예순 둘의 나이로 은퇴한다. 이후 치매와 직접 싸워야 하는 환자로 살며 이 질병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출 방법을 모색한다.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고 심장 건강에 좋은 식생활을 하는 등 인지 능력을 기른다고 증명된 생활 습관을 체화하고 과학 문헌을 읽으며 여러 가능성을 탐구한다. 치료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도 적극 참가한다.
저자는 지난 10여 년 여정을 꼼꼼히 기록하며 병의 경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한다. 동시에 정해진 결말을 향해 먼저 걸어간 한 사람으로서 이 병을 두려워하는 다음 사람에게 치매에 걸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려 깊은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1만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