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 2000년 전 죽은 남편의 가슴에 얹은 ‘망부가’ 거울

2025-04-07

‘○○○ 파경….’ 이혼이나 이별을 알리는 기사 제목에 즐겨 등장하는 용어가 ‘파경(破鏡)’이다.

거울이 깨졌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파경’에는 ‘중원(重圓·다시 원을 이룸)’이 붙어 ‘파경중원(破鏡重圓)’, 즉 ‘이별(파경) 후 재회(중원)’가 본뜻이기 때문이다.

■파경=이별과 재회

<태평어람>(938년 편찬)은 <신이경>(기원전 132년 편찬)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옛날 어떤 부부가 부득이 떨어져 있게 되자 거울을 깨뜨려(破鏡) 각기 반씩 나누어 징표로 삼았다.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하자 그 깨진 거울이 까치가 되어 남편에게 날아가 일러바쳤다.”(‘파경’)

‘깨진 거울(鏡·경)이 까치(鵲·작)가 되어(化·화) 날아갔다(飛·비)’는 ‘경화작비(鏡化鵲飛)’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가리킨다.

<태평광기>(978년 편찬)에는 이별 후 재회, 즉 ‘파경중원’의 기사가 보인다. 즉 남조 진(陳·557~589)의 관리였던 서덕언은 수나라군이 쳐들어오자 청동거울을 반으로 잘라 부인과 나눠 가지며 재회의 증표로 삼았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이걸(거울 반쪽)을 장안(長安·도읍) 시장에 내다 파시오. 내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가겠소.”

결국 진나라는 멸망했고, 서덕언의 부인은 수나라 개국공신인 양소(?~606)의 노예로 끌려갔다. 부인은 양소의 첩이 되어 총애를 받게 됐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 남편(서덕언)은 장안으로 올라와 정월 대보름에 시장을 찾았다. 과연 어떤 이가 반쪽 거울을 팔고 있었다. 맞춰보니 꼭 맞았다. 서덕언은 눈물을 흘리며 거울 뒷면에 시를 적어 돌려보냈다.

‘거울은 사람과 함께 떠났는데, 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네. 항아(전설 속 선녀)의 그림자는 다시 볼 수가 없고, 공연히 밝은 달만 휘영청 빛나네.(鏡與人俱去 鏡歸人不歸 無複嫦娥影 空留明月輝)’

거울을 돌려받은 부인은 남편의 시를 읽고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양소는 서덕언에게 그 아내를 돌려주었다.

■설씨녀와 가실의 파경중원

‘파경중원’의 일화는 신라에도 있다. <삼국사기> ‘열전·설씨녀’에 등장한다.

“진평왕(579~632) 연간에 설씨녀는 늙은 아버지가 국경 수비대로 징발되었는데, 대신할 이가 없어 근심에 빠졌다. 평소 설씨녀는 흠모해왔던 가실 총각이 ‘내가 대신 가주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에 설씨녀는 거울을 반으로 잘라 ‘당신이 돌아올 때 이 거울을 합쳐보자’고 신표로 삼았다.”

그러나 국경 수비에 나선 가실은 6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보다못한 설씨녀의 아버지는 다른 남자와 혼인을 추진했다.

하지만 설씨녀는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고 버텼다.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가실이 깨진 거울을 설씨녀에게 던졌다. 설씨녀는 그 거울을 주워들고 큰소리로 울었다. 두 사람은 결국 혼인에 골인했다.

■은감(殷鑑)과 위징 거울

<시경>은 “은나라가 거울로 삼을 것은 멀리 있지 않고 하나라 시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나라(기원전 2070~1600)는 마지막 왕인 걸왕(기원전 1652?~1600)의 폭압정치 때문에 은(상)나라에게 멸망했다.

따라서 은나라는 멀리 갈 곳도 없이 직전 왕조인 하나라 걸왕의 실정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감(殷鑑)’은 ‘본받아야 할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당나라 태종(재위 626~649)과 명재상 위징(580~643)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위징은 200차례가 넘는 간언으로 태종을 성군으로 만든 인물이다. 그런 위징이 죽자 당태종이 남긴 추모글이 심금을 울린다.

“금속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국가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 내가 항상 이 거울 3개로 잘못을 예방했는데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를 잃었구나.”(<구당서> ‘열전·위징’)

거울은 이처럼 사물을 비추는 물건일 뿐 아니라 본보기와 반성, 교훈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됐다. 그러니 <자치통감>, <동국통감> <국조보감> 같은 역사서에 거울 ‘감(鑑)’자를 쓰는 것이다.

■잔무늬 거울의 여운

최근 국립나주박물관에 이어 국립청주박물관이 잇달아 ‘거울’ 관련 특별전을 열고 있다.

필자는 국립나주박물관 전시(‘빛, 고대거울의 속삭임·2024년 10~2025년 2월’)를 다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박물관측이 고맙게도 귀한 특별전 도록을 보내주었다.

마침 국립청주박물관이 거울을 주제로 특별전(‘거울, 시대를 비추다·3월21~7월20일’)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주 특별전 때의 직무유기가 떠올라 이번에는 특별전 개막일(3월22일)에 맞춰 청주로 달려갔다.

사실 나주 특별전 때의 게으름에 대해 변명 한마디 해야겠다. 흔히 고대 거울하면 기원전 3~1세기에, 그것도 주로 한반도 서부와 남부에서 유행했던 ‘잔무늬 거울’(정문경·精文鏡)을 떠올린다. 그중 단골로 소개되는 거울은 ‘국보경’으로 통하는 ‘잔무늬 거울’(전 충남 논산)이다.

‘국보경’ 장인은 청동거울 제작의 황금비로 알려진 구리·주석 비율(67대 33)에 거의 맞추었다.(66대 34) 게다가 0.3~0.55㎜ 간격으로 그은 1만3000여개의 선과 동심원이 정교하기 이를데 없다.

특히 한반도 ‘잔무늬 거울’은 하늘과 인간, 땅의 소통을 독점하는 제정일치 시대 지도자의 소유물로 여겨졌다. 은백색 거울을 가슴에 달고 햇빛을 반사하면서, 청동방울을 흔들며 하늘신·조상신과의 접신을 시도했던….

이러한 ‘국보경’ 등 잔무늬 거울은 기회있을 때마다 언급한 바 있다. 그랬기에 박물관의 ‘거울 특별전’에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상투적인 명문 해석

그러나 거울이 어디 ‘잔무늬’ 한 종류 뿐인가.

이번에 국립나주박물관의 특별전 도록과 국립청주박물관의 전시회를 통해 거울의 ‘인문학적인 가치’를 살필수 있다. 무엇보다 필자의 시선을 잡아끈 거울이 있다. 그것은 2017년 초겨울 경산 하양읍 양지리의 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거울’ 3점이다.

기원전1~기원후 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널무덤(목관묘)의 주인공은 진한 소국의 우두머리로 추정됐다. 널(목관)에는 부채와 허리띠장식, 유리목걸이, 청동장식품, 철제품 등과 함께 한경(漢鏡·중국 한나라 거울)이 껴묻이 되어 있었다. 주인공의 허리춤 쪽 나무관 밑에는 별도의 구덩이를 파고 청동제창과 칠기 창집, 오수전(중국 동전) 26개를 붙인 칠기 꺾창집 등을 잔뜩 담은 함을 넣어 두었다.

그중 청동거울 3점은 그다지 주목받는 유물은 아니었다. 모두 중국(한나라) 수입품인데다, 거울 2점에 새긴 명문 또한 판에 박힌 내용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당대에 제작된 ‘한경’(중국 거울)의 명문 해석은 상투적이었다. ‘한경’에 새겨진 명문에는 ‘일광(日光)’, ‘소명(昭明)’ ‘청백(淸白)’과 ‘군망망(君忘忘)’ 등의 글귀가 많다.

당대(한나라)에는 전국시대 초나라 애국시인 굴원(기원전 340~278)의 ‘우국충정’을 담은 초사풍(楚辭風)의 문체가 대유행했다. 그러니 모든 글과 시가 ‘우국 충정’으로 해석되기 일쑤였다.

양지리 출토 명문거울 두 점도 어떠했을까. 머리맡에서 확인된 거울 1점에는 ‘군주를 향한 밝은 충심’ 등을 새긴 글이 확인됐다. 글 내용 중에 ‘소명(昭明)’이 있어 ‘소명경’이라 일컫는다.

■고인의 가슴에 놓인 거울의 정체

사실 또 다른 한 점의 명문거울은 심상치 않았다. 주인공의 가슴 위를 덮은 부채 자루 밑에 곱게 올려놓은 청동거울이었다.

지름 17.4㎝나 되는 이 거울은 한반도 남부 출토품 가운데 가장 큰 한경(한나라 거울)이었다.

거울 뒷면에는 33자나 되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君忘忘而先(失)志兮 愛使心臾者 臾不可盡行 心沄(汙 혹은 汗)結而獨愁 明知非不久處 志所不己’로 판독되었다.

이 거울에 ‘군망망경(君忘忘鏡)’의 명칭이 붙었다. 이 명문 내용의 해석은 크게 두가지였다.

“한탄도 하지 못하고…슬픔에 지쳐 마음의 고통을 호소할 수 없어 우울할 수밖에…사세를 알면 오래 머물러서는 안되지만 자신의 일관된 마음은 항상 제거되지 않는다.”(①해석)

“그대(군주)는 젊은 날의 포부를 버리셨으나 (군주를 향한) 간절한 사랑(충심)은 가슴 속에 가득하네. 몸은 뜻한대로 이상(충심)을 따르기는 어려워 (나의) 마음은 갑갑함으로 뒤엉켜 홀로 울적하다네. 옳고 그름이 함께 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나의 충심은) 뜻하는대로 여전히 곧장 나아간다.”(②해석)

①은 신세 한탄과 스스로에 대한 경계, ②는 군주를 향한 가없는 충심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다.

①②해석은 2020년 국립대구박물관이 개최한 ‘양지리 특별전’의 도록(‘떴다! 지배자, 새로 찾은 2000년전 경산 양지리 널무덤’)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①② 해석 모두 다소 상투적이고, 따분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양지리 무덤의 주인공은 진한 소국의 지도자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분의 가슴에 왜 ‘신세를 한탄하고’ 혹은 ‘충성을 다짐하는’ 명문 거울을 고이 올려놓았단 말인가.

■‘애끊는 망부가’

그런데 최근 전혀 다른 해석(③)이 등장했다.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 도록에 ‘환골탈태한 해석문(③)’이 실렸다. 어떤 내용일까.

“남편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갑자기 우울증에 걸린 것 같네요. 병은 호전되지 않고 그는 혼자 근심하여 마음의 병은 더욱 뒤엉켜 풀리지 않네요. 나는 그가 오래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으로 너무나 사랑하여 아직은 놓아줄 수 없네요.”

대체 무슨 뜻일까. 부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남편의 가슴에 고이 올려놓은 청동거울이라는 것이다. ‘너무도 사랑한 남편을 아직 놓아줄 수 없다’고 애끊는 마음을 전하며….

참 희한한 일이다. 변함없는 33자를 두고 어쩌면 그렇게 ①②③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해서 양지리 출토 ‘군망망경’의 해석을 주도한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에게 물었더니 한 편의 논문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리링(李零) 베이징대(北京大) 중문과 교수가 2012년 발표한 논문(‘량지안이 소장한 4편의 명문거울 해석-한경의 명문 중 여성 부체시’(<중국문화> 35기)이었다. 리링 교수가 분석한 한경은 저명한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의 증손자인 량지안(梁鑒)이 소장한 청동거울이다.

리링은 ‘군망망~’이 들어간 거울의 명문을 조목조목 분석한 뒤 다음과 같은 해석문을 내놓았다.

‘君忘忘(恍恍) 而失志兮 舜(頓)使心臾(瘐)者 臾(瘐)不可盡兮 心汙(紆)結而獨愁 明知非(彼)不可久處 志所驩(歡) 不能已’

이 해석을 두고 리링 교수가 풀이한 번역문이 바로 병으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한 부인이 ‘당신을 영원히 놓아줄 수 없다’고 통곡하며 고이 올려준 거울이라는 것이다.

양지리 출토 ‘군망망경’의 명문(33자)은 리링이 ‘량지안 소장 군망망경’(36자)과 비교할 때 3자(臾, 驩, 能)가 적을 뿐 나머지는 같다. 그 시대 제작된 ‘한경’은 다양한 내용의 청동거울을 다수 제작했는데, 그 중 한 버전이 ‘군망망경’이라는 것이다. 물론 양지리 출토 ‘군망망경’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따라서 거울의 명문 내용이 실제 무덤 주인공의 상황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병에 걸려 죽은 남편을 그리워 하는 부인이라면 마침 비슷한 내용이 새겨진 한경을 남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명문의 ‘군(君)’을 상투적인 해석인 ‘임금’이 아니라 ‘남편’으로 읽으니, ‘애끊는 망부가’로 환골탈태했다.

■다른 의미의 ‘파경’

‘파경(破鏡)’ 또한 눈길이 가는 특별전 아이템이다. 물론 국내에서 아직까지 ‘파경중원(이별-재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예컨대 거울의 반쪽을 남편, 다른 반쪽을 부인 무덤에 나눠 묻는 그런 케이스는…. 그러나 공주 수촌리에서 반쪽으로 나눈 대롱옥이 440~450년 사이에 조성된 무덤 2곳에서 확인된바 있다. 이를 두고 백제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스토리텔링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른바 깬 거울을 다시 합친다는 의미의 ‘파경중원’을 증거해줄 두 쪽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없다’가 아니고.

다만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파경 행위는 더러 보인다. 예컨대 1500년전 신라 마립간(내물왕 혹은 눌지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거울을 천으로 감싼채 깨뜨린 모습도 보인다.

또 충남 서천 장항, 충북 청주 정중리, 전북 완주 덕동 및 신풍 등에서는 거울을 수십조각으로 부숴 모아두거나, 흩뿌린 흔적도 읽혔다. 이런 ‘파경’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깨진 거울이나 용기는 이제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것이니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일 수 있다. 또 죽은 자가 산 자의 공간에서 맴돌지 않고 저 세상으로 편히 가라는 배려도 숨어있다.

■거울 10점을 품은 16세 소녀

또하나 얘깃거리가 김해 양동리 162호 무덤에 숨어 있다. 이 무덤에서는 한경 2점과, 한경을 모방해서 만든 거울(방제경) 8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 무덤은 판 모양의 쇠도끼 40여 점 등 엄청난 양의 철기를 부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무덤의 주인공이 기원후 1~2세기 이 지역의 수장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무덤에서 출토된 치아를 분석했더니 깜짝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이 무덤의 주인공이 16살 무렵의 소녀로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녀는 중국-일본 등을 오가며 교역을 책임지며 부와 권력을 쌓은 가문의 딸인가. 혹은 소국의 공주일까.

그런 여인이 몸단장 할 때 들었던 거울이 10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제 명품 거울 2점에, 그 명품을 카피한 국내산 거울 8점을 번갈아 사용한 것일까.

■고구려인의 손거울, 무령왕의 벽걸이 거울

100년 이상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이번에 처음 햇빛을 본 거울이 있다.

1916년 평남 용강군 황산 남쪽 기슭의 칠실총에서 출토된 철제거울이다. 칠실총은 하나의 봉토에 돌곽(석곽) 7기가 열 지어 조성된 고분이다. 그중 5번째 방에서 지름 5.6㎝에 불과한 철제 거울이 발견됐다. 무덤 주인공이 지니고 다니면서 몸치장 했던 손거울이 아닐까.

1971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거울도 눈길을 끈다. 이 거울은 고리를 중심으로 ‘의자손(宜子孫·자손의 번성을 바람)’ 명문과 함께 신령스러운 동물을 표현했다. 이 거울은 고리(거울걸이)에 가죽끈이 끼워진채 발굴됐다. 무령왕은 지름 23.3㎝ 되는 이 청동거울을 벽에 걸어놓고 임금의 품위에 맞게 단장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기증 거울

고 이건희 삼성회장 유족이 기증한 금속공예품 926점 가운데 거울은 555점에 이른다.

이번 특별전에 고대~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기증 거울이 선을 보인다.

그중 한경(한나라 거울)에서 주로 보이는 ‘소명경’과 ‘일월경’ 등이 눈에 띈다. 또한 한경 중 명대경(명문 거울)의 일부를 재가공해서 안옥(眼玉)의 용도로 쓴 것도 이채롭다.

안옥이 무엇인가. 전국~전한 시대에 걸쳐 죽은 무덤 주인공의 혼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시신의 모든 구멍을 막는 옥(玉)을 장옥(藏玉)이라 한다. 그중 시신의 눈을 덮는 옥이 ‘안옥’이다. 청동거울을 재가공하여 만든 안옥에는 ‘상(象)’자 명문이 남아있다. 아마 ‘~昭明光而(夫)象不輝~’로 이어지는 ‘소명경(昭明鏡)’을 재가공한 것 같다.

■마음을 꿰뚫는 거울

거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둘 있다. 첫번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다.

그는 연못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 홀딱 반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또 두번째는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하고 물었던 ‘백설공주’의 사악한 왕비.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동양의 거울은 겉모습만 비추지 않는다.

<한비자>(기원전 2세기)는 “사람은 스스로를 볼 수 없기에 거울(동경)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 거울로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면 올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다.”(‘관행’)고 했다. <서경잡기>(기원전 1세기)는 한술 더 떠 ‘진시황의 함양궁에 매단 명경고현(明鏡高縣·높이 매달린 맑은 거울)’을 언급한다.

“그 거울(동경) 앞에 서면 그 사람의 오장이 보이고, 병이 있는 사람은 환부가 나타나며, 나쁜 마음까지도 알 수 있었다.”(‘함양궁 이물’)

거울을 통해 사람의 겉모습은 물론이고, 그 마음까지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이 기사를 위해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안경숙 학예연구실장이 도움말과 자료를 전해주었습니다.)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국립나주박물관,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특별전 도록>, 2024

국립대구박물관, <떴다! 지배자, 새로 찾은 2000년 전 경산 양지리 널무덤>(특별전 도록>, 2020

이양수, ‘경산 양지리 1호 목관묘 전한경’, <떴다! 지배자, 새로 찾은 2000년 전 경산 양지리 널무덤>(특별전 도록>, 국립대구박물관, 2020

안경숙, ‘거울문양을 통해 본 고대 사람들의 내세관’,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특별전 도록>, 국립나주박물관, 2024

리링(李零), ‘량지안(梁鑒)이 소장한 4편의 명문거울 해석-한경의 명문 중 여성 부체시’, <중국문화> 35기, 2012.5

홍인국, ‘중국 중원 일대 파경 풍습과 한반도 수용’, <유라시아문화>8, 유라시아문화학회, 2022

강민석, ‘묘역지석묘의 유물 훼기와 장송의례’, <한국고고학보> 2023권 1호, 한국고고학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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