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주사위, ‘수세식 변기’ 쓴 태자…신라사 다시 쓰기 물꼬 텄다

2025-02-09

수입산 상아 주사위를 갖고 놀고, 배설 즉시 오물이 씻겨가는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던 동궁의 태자-. 지난 10년 간 신라왕경 핵심유적 발굴조사(이하 왕경 조사)를 통해 그려보게 된 1300여년 전 통일신라의 모습이다. 고분이 아니라 생활유적을 통해 당대 삶을 짚어보게 되면서 ‘신라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도 비친다.

국가유산청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014년 착수한 왕경 조사의 10년치 성과를 지난 6일 종합 공개했다. 가장 주목받은 게 경주 월성과 월지(옛 안압지) 일대 조사에서 태자가 거주하던 동궁의 위치가 월지 동편으로 특정된 사실이다.

월성은 서라벌로 불린 신라의 수도(현재의 경주) 안에서 궁궐과 주요 행정기관 등이 모여있던 핵심 공간.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문무왕(재위 661~681년) 때인 676년 나당전쟁을 끝내고 삼국통일을 이룬 후 679년 동궁을 지었다. 앞서 궁궐 안에 조성한 연못(월지)와 더불어 이 같은 왕실 공간의 확장은 통일신라의 자신감과 함께 중국과 같은 왕위 후계 체제의 안정화를 뜻했다.

역사서에 한줄만 등장하는 동궁의 존재는 왕경 조사 최고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학계에선 그간 월지 서쪽(Ⅰ-가지구) 건물터를 주목했지만 2022년 동쪽 발굴이 본격화하면서 기류가 변했다. 동쪽 권역(Ⅱ-나지구)에서 복도식 건물인 회랑과 넓은 마당, 정원에 둘러싸인 연못(園池·원지) 흔적이 나왔다.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취)를 감안할 때 중심 건물은 정면 5칸(길이 25m), 측면 4칸(약 21.9m) 규모다. 넓은 기단 형태의 월대 등 궁궐이나 사찰의 금당 같은 권위적인 건축물에서만 존재한 부속물도 잇따라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의 김경열 학예연구사는 “사찰터라면 탑 흔적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궁궐터”라면서 “동궁일 가능성이 95% 정도”라고 말했다.

월지 서쪽 건물터의 성격도 재규명됐다. 이곳엔 7세기 후반 축조된 권위적인 건물지가 있는데 중심 건물이 정면 7칸(29.1m), 측면 4칸(19.4m) 규모로 동쪽보다 크다. 내부에선 왕의 전용 상징물인 답도(계단 중앙석) 등이 확인됐다. 정황상 월성 내 왕의 공간이 확장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 학예사는 “해발고도나 규모 차이를 볼 때 왕의 공간과 별도로 태자의 공간을 동쪽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월지 동쪽 건물터에선 2017년 상아로 만든 주사위(0.7㎝ 정육면체), 2022년 8세기 금박 유물(선각단화쌍조문금박) 등이 잇따라 나왔다. 이곳이 동궁터라면 신라 태자의 애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형 석조 변기와 이를 포함한 화장실 유구도 주목된다. 연구소 측은 “흐르는 물로 오물을 바로 내릴 수 있게끔 상하수도 개념이 적용된 일종의 수세식 측간”이라며 “이 같은 수준 높은 시설도 동궁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월성 유적 서남쪽 A지구에서 신라의 모태인 3세기 사로국 시대 건물터 및 의례 제물로 바친 개의 흔적이 발굴되는 등 다채로운 성과가 조망됐다.

다만 왕경 조사에서 애초 중심이었던 ‘신라 왕궁의 원래 위치’는 아직 물음표다. 신라는 월성에 궁성을 조성한 후 통일 후 이를 넓혀갔는데 이번에 발굴된 터는 통일 이후에 해당한다. 연구소는 A~D지구로 이뤄진 월성 조사에서 일부 행정관청 터는 확인했고 왕궁 발굴은 시간을 두고 계속해갈 방침이다.

국가유산청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이번 발표는 지난 10년의 성과이자 신라 왕궁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고 있는 1단계에 해당한다”면서 “처음부터 50년 이상 걸리는 사업이라고 봤기에 차근차근 정밀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해방 후 고고학이 고분 발굴 위주로 이뤄졌지만 신라왕경은 당대의 생활유적이란 점에서 차원이 다른 접근”이라면서 “이를 통해 ‘신라사 다시 쓰기’가 이뤄지면 이를 포함한 삼국 역사를 엮어내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학계 전문가들은 문헌이 부족한 고대사 접근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서둘러 치적을 내려하는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쓴다는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발굴조사=2014년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에 맞춰 경주 일대의 신라유적을 월성·월지, 쪽샘 고분 등 8개 권역으로 나누고 단계별 발굴조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14개 권역으로 늘었다. 사업의 근간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경주 관광 종합 개발 계획’이 있다. 문화유산을 포함한 경주의 관광잠재력을 높이 본 박정희 정부는 천마총·황남대총 등의 발굴에 이어 월성 발굴도 계획했지만 여러 여건상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경주권의 꾸준한 요구에 힘입어 2014년 사업이 시작됐다. 당시에도 학계는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고 최소 50년은 걸리는 대사업”이라고 봤다. 2019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법적으로 이 대장정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마련됐다. 2014~2025년 신라왕경 사업 예산(국비 기준)은 총 2902억원 투입됐고 월성에만 719억원이 들었다. 현재는 백제 수도였던 부여·공주·익산에서도 왕경 발굴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가야 핵심유적인 고령도 올해 가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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