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시즌을 마친 SSG는 지난 10월5일 선수 10명을 방출했다. 베테랑 좌완 고효준(41)도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83년생, 은퇴를 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고효준은 딱 하루만 쉬고 운동을 재개했다. 자기답지 못한 투구를 한 올해가 선수로서 마지막이 되길 원치 않았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고효준은 지난 11일 스포츠경향과 통화하며 “꿋꿋이 견디면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고효준은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누구보다 길게 프로 생활을 이어온 선수다. 2002년 롯데에서 데뷔한 뒤 SK(현 SSG), KIA, 롯데, LG를 거쳐 2022년부터 올해까지 SSG에서 뛰었다. 1군 통산 601경기에 등판해 47승54패 4세이브 56홀드 평균자책 5.27의 성적을 거뒀다. 2021시즌이 끝난 뒤 LG에서 방출된 고효준은 입단 테스트를 거쳐 2022시즌 SSG 유니폼을 입었고, 45경기 1승 7홀드 평균자책 3.72를 기록하며 SSG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불혹에 접어든 지난해에도 투철한 자기 관리로 팀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며 73경기 4승1패 13홀드 평균자책 4.50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4월까지 순항하던 고효준은 5월초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재활을 마치고 약 한 달 만에 1군에 복귀했지만, 6월 8경기 1패 평균자책 12.91로 흔들렸다. 고효준은 27일 KT전 0.2이닝 3실점을 마지막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그 후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26경기 2승1패 5홀드 평균자책 8.18이었다.
고효준은 “부상 여파로 밸런스가 흐트러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제구에 신경을 쓰려다가 역효과가 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베테랑이니까 조금 더 쉽게 던지고, 가볍게 잡으려고 했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그런 모습을 바라셨다”며 “제구에 신경을 쓰다 보니 오히려 타자와 와일드하게 대결하는 장점이 많이 사라졌다. 20년 넘게 다져온 장점을 제가 버린 것 같다”고 후회했다.
고효준은 현재 아파트 헬스장에서 웨이트와 러닝을 하며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은퇴 선수들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공도 던지며 감을 유지 중이다. 그는 “지금은 던지는 것보다 트레이닝에 중점을 둬야 하는 시기”라면서도 “입단 테스트 기회가 있을 수도 있어서 70% 수준으로 투구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47㎞까지 찍혔다고 한다.
고효준은 한눈팔지 않고 다가올 기회에 대비하고 있다. 올시즌 마지막 1군 경기였던 KT전 패전이 현역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는 “마운드에서 한 번 더 제 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얼추 마무리되면 테스트 등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공이 아직 1군에서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고효준은 “‘연차가 있는데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다”며 “제 공을 직접 보면 이 사람이 왜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2002년 프로 선수로 출발선에 섰던 고효준은 20년 넘게 어디가 끝일지 모르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는 아직 더 달릴 힘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고효준은 “그만둘 때가 되면 몸에서 먼저 반응이 온다. 그 느낌이 들면 싫어도 은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제 공을 보면 그 느낌은 없는 것 같다. 정말 강하게 최선을 다해서 던졌는데 140㎞가 안 나오면 그땐 시원하게 공을 놓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