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60일

2025-02-24

“걱정과 달리 정치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국이 헌법과 민주적 규범에 따라 잘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교착이 재정 악화로 이어진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는 게 그들의 평가다.”

이달 중순 홍콩과 싱가포르를 돌며 한국경제 설명회를 연 최종구 국제금융협력 대사의 전언이다. 계엄, 이어진 대통령 탄핵으로 당장 금융시장의 불안이 발등의 불이었는데 관건인 해외 투자자와 신용평가사들은 큰 동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기친람’ 최고 권부 공백에도

일상 돌아가고, 정책 무리수 줄어

‘정치의 역할’ 역설적으로 깨우쳐

최 대사는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정통 관료로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국제금융 분야에서 일했다. 다시 무보수 명예직 대사로 출장길에 오른 것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다음 달 다시 뉴욕과 런던으로 떠날 예정이다.

국제투자협력 대사로 나선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상황 진단도 같은 맥락이다. “앞선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과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굵직한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와 경제가 성숙해진 덕”이란 게 그의 얘기다.

25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지 73일째가 된다. 즉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마저 탄핵 소추되면서 ‘최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선 지는 꼭 60일이 됐다. 이 기형적인 체제 속에 나라 안팎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해 파상적인 관세 공세를 벌였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같은 사고도 빈발했다. 정치 진영 간 공방은 더욱 노골화하고 갈등과 대립의 골도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우려했던 극단적인 무정부 상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최고 권부의 공백’에도 일상적인 경제 시스템이 큰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요동치던 환율과 주가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게 방증이다. 새삼 대한민국이 그리 간단한 나라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비대했던 대통령실과 달리 최 대행 체제는 기존의 기획재정부 조직에다 최소한의 지원 조직으로 굴러가고 있다. 예전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지만 그래도 기재부는 여전히 행정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숱한 위기를 통해 단련되고, 예산과 경제 정책으로 국가를 움직여본 경험이 축적돼 있다. ‘만기친람’형 대통령실이 작동을 멈추자 오히려 세종 관가에선 “정무적 개입에 정책이 왜곡되거나, 무리한 요구가 돌출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는 말도 나온다.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왕고래 프로젝트’ 탐사결과 브리핑이 대표적일 것이다. 애초 관가에선 정밀 분석 결과가 나오는 5~6월 즈음에야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1차 탐사 결과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는 결론을 신속히 내놨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최 대행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공개하게 될 내용인데 시간을 끌어봐야 불필요한 논란과 후유증만 키울 뿐이란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기대했던 희소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은 줄였다. 남은 건 대통령의 이례적 직접 발표와 야당의 예산 삭감 공세에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자원개발 사업을 다시 차분하게 진행하는 일일 테다. 여기에 민간 기업 인사까지 일일이 개입하며 ‘선을 넘던’ 관치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이처럼 지난 60일의 경험은 역설적이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힘이 작동 불능 상태인 대통령실이나 여전히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고 있는 국회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핵심적인 버팀목은 뭐니뭐니해도 잘 훈련되고 조직된 공직사회,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일 테다.

대통령과 국회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깨우쳐 줬다. 단순히 위기를 관리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 결단을 내리고, 대외 협상에 나설 리더십의 공백은 뼈아프다. 시급한 연금개혁을 포함한 구조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두고두고 부담될 것이다. 이런 일이야말로 관료적 사고를 깨는 ‘정무적 개입’이 필요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통합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앞서 최종구 대사가 전한 해외 분위기 역시 마냥 안심하긴 이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당장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제를 달았다. “정치적 교착 상태가 오래가지만 않는다면”이 그것이다. 혼란을 수습해야 할 정치권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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